8일 폐막된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총회는 지난 5일 일본의 근대산업시설군 일부에서 수많은 한국인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돼 강제로 노역한 역사적 사실이 반영된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을 21개 위원국 컨센서스로 채택했다. 이번 총회에서 일본 대표는, 각 시설의 ‘전체 역사(full history)’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라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권고를 충실히 반영할 것임을 언급한 데 이어,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동원돼 가혹한 조건 아래서 강제로 노역했음과 인포메이션센터 설치 등 희생자를 기리는 조치를 할 것임을 발표했다.

이는 그동안 일본 정부가 강점기 강제노역 동원 사실을 부정해왔던 점에 비춰 분명히 진일보한 것이다. 일본 측은 당초 산업유산 등재를 1850∼1910년으로 한정함으로써 강제노역 사실을 피해 가려 했으나, 결국 1940년대를 포함시킴으로써 이들 시설의 전체 역사를 반영토록 하라는 국제 여론을 받아들인 것이다. 비록 일본 정부가 강제노역 동원에 대한 법적 책임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 유산 등재 합의는 한·일 관계 개선의 첫걸음을 뗐다는 의미가 크다. 더 나아가 이를 한·일 관계 개선의 계기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올해는 해방 70주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지만, 최근 들어 한·일 관계가 최악이라는 우려가 자주 제기된다. 일본의 아베 정권은 보통국가화를 위한 노선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는 동시에 최근 들어 역사수정주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워싱턴 중심의 공공외교를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과거사라는 난제를 가지고 양국이 벌이고 있는 외교전은 지루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소모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한국으로서도 일본의 적극 외교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추해 본다면 한·일 양국이 관계 정상화를 위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한 것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합의가 분명 긍정적인 신호이긴 하지만 한·일 양국은 이번 유산 등재를 계기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일본이 과연 약속한 대로 후속 조치를 충실히 이행할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 주변국들의 우려를 반영해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이 2017년 12월 1일까지 권고이행 경과 보고서를 제출토록 하는 한편 2018년 제42차 회기에서 일본 정부의 이행 상황을 직접 점검키로 했다.

또한, 일본이 전체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조치를 하는 과정에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자문하기로 했다. 이는 일본 나름대로 국제사회를 향해 성의를 보인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일본의 진의에 대해서는 여전히 일말의 의구심이 남는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유산 등재가 확정된 직후 강제 노역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는 묘한 주장을 내놨다. 영어 표현 ‘forced to work’를 강제의 의미가 빠진 단순 수동형인 ‘일하게 됐다(働かされた)’로 일역(日譯)함으로써 치졸한 해석상의 꼼수를 썼다는 인상이 짙다. 나중에 이를 빌미로 ‘강제노역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억지 주장을 펼 가능성도 있다.

일본이 약속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할지는 결국 국가적 양심과 위신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일본이 이번에야말로 과거사로부터의 진정한 결별, 주변국들과의 역사적 화해를 위한 용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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