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종말에도 무너지지 않는 100가지 삶의 지혜’(위너스북)의 저자 아나 마리아 스파냐는 오지 트레커인 논픽션 작가로, 워싱턴주 노스 캐스캐이드 외딴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은 산길과 배, 수상 비행기로만 갈 수 있는 외지로 전화조차 없다고 합니다. 요즘 세상에 전화가 없다니 믿기 어렵지만 ‘세상의 종말에도…’같은 책을 쓰기에 좋은 환경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책은 석유가 고갈되고 환경 재앙이 닥치거나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유로 대재앙이 왔을 때 꼭 필요한 100가지 기술을 소개합니다. 도대체 세상 종말에 필요한 기술은 어떤 것들일까요. 도축하기, 에너지 비축하기, 직물 짜기, 사냥하기 같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 당연히 있습니다. 협상하기, 물물교환 같은 좀 더 고차원의 기술도 있습니다. 하지만 100가지 중 상당 부분은 필수적이라기보다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음악 만들기, 책 읽기, 대화하기, 손님 맞기, 걷기, 새소리 듣기, 신나게 웃기, 구름 모양 읽기, 몽상하기…. 세상 종말에 무슨 구름 모양 읽기냐고 할 수 있지만, 절대 절망 속에선 사냥보다는 구름 보며 신나게 웃는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직접 몸을 움직여, 세상에 다가가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일상적인 것들 말입니다. 저자는 아마 세상 종말이라는 삶의 건너편에 서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들을 헤아려본 듯합니다. 그래서 세상 종말을 이별과 실패, 실직 같은 절망의 시간으로 바꿔도 됩니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때론 세상의 끝이니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고 지킬 수 있는 기술이 100가지나 있다면 뭐가 무섭겠습니까. 자신을 북돋으며 지킬 수 있는 자신만의 기술을 몇 개나 갖고 있는지요. 나에게 필요한 기술 목록을 적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덧붙여 미국 오지 작가의 종말 기술을 읽다 문득 든 생각이 하나 더 있습니다. 거대 담론부터 이처럼 소소한 주제까지 참 다양한 책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2014년 국내 신간발행 종수가 4만7589종, 계산상으론 매주 991권이 나오는 셈이니 그 다양함이란. 갈수록 대형화, 자본화되는 문화 지형에서 이렇게 다종다양한 텍스트가 생산되는 곳은 책 시장밖에 없는 듯합니다. 상업영화 중심의 영화에선 불가능하고, 무대가 한정된 공연도 어렵고, TV는 채널 한계에 시청률 때문에 더더욱 어렵습니다. 흔히 올드 미디어라는 책이야말로 관점과 취향이 다분화되는 이 시대를 반영하는 가장 현대적인 미디어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100가지 삶의 지혜’를 배운 끝에 든 101가지 생각입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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