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섭 / 서울대 교수·정치커뮤니케이션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했다. 향후 당·청 관계는 어때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역설적(逆說的)이지만,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로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여당 의원들이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원만한 당·청 관계 회복 노력이 시급하다.

유 전 원내대표가 ‘자기 정치’를 추구한 것인지, 원내대표가 ‘자기 정치’를 해도 되는 자리인지에 대해선 이견이 분분하다. 또 많은 유권자는 국정 수행에 국회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박 대통령의 문제의식도 공유한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의 결말은 박 대통령에게 ‘상처뿐인 승리’다. 중도·합리적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 철회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 지역’과 ‘60대 이상’의 유권자층에서만 박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보다 높은 상황이다.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유권자들만이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형국이다.

박 대통령이 유 전 원내대표를 ‘벌’하는 모습은 많은 유권자에게 과거 권위주의 시대를 연상케 했다. 한 보수 성향의 칼럼니스트조차 박 대통령을 ‘공화국의 여왕’으로 묘사했다. 유 전 원내대표를 오히려 권위주의에 저항한 의인(義人)으로 만들어준 셈이다. 유 전 원내대표가 여권 내 차기 대선주자 2위로 급부상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런 정서를 대변한다. 물론 이 조사가 자동응답(ARS) 방식이어서 야권 지지 성향의 유권자들이 과도하게 참여했을 개연성이 짙다. 그러나 많은 유권자가 박 대통령을 외면하게 된 점만은 부정하기 힘들다.

만약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만 행사하고 말았으면 어땠을까? 유 전 원내대표의 정치생명은 위기를 맞았을 것이고, 박 대통령 지지층의 외연은 오히려 확대됐을 것이다. 문제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선거의 여왕’ 신화가 깨질 것이라는 점이다. 내년 총선에서 맨 오른쪽에 위치한 유권자들에게만 어필해서 당선될 현역 여당 의원은 거의 없다. 비영남권에 지역구를 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승리함으로써 많은 지지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부채의식을 덜게 된 상황적 요인도 작용할 것이다. 콘크리트 지지층 약화가 예상되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유 전 원내대표를 ‘벌’한 것이 여당 의원들에게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울 동기를 제대로 부여해준 셈이다.

필자가 지난 제18대 국회에서 이뤄진 2380여 법안에 대한 표결을 분석한 결과, 박 대통령은 분석에 포함된 167명의 당시 한나라당 의원 중 62번째로 야당 쪽에 가까운 표결 성향을 보였다. 수도 이전 문제뿐 아니라, 꽤 많은 법안에서 지지율 폭락으로 리더십을 상실한 이명박정부에 각을 세우며 대권 후보로서의 입지를 다진 것이다. 반면, 현 정부 들어 여당의 잠룡들이 아직까지 이러한 행보를 보이지 못한 것은 각종 선거에서 ‘박근혜 효과’를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유승민 엄벌’과 ‘선거의 여왕’ 지위를 맞바꿨다. 박 대통령이 이명박정부 시절 그랬듯이 많은 여당 의원이 박 대통령에 대한 ‘각 세우기’를 시작할 가능성이 커진 이유다.

박 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산업화 시대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여당의 협조 없이 남은 임기 동안 역사에 남을 업적을 내는 건 불가능하다. 리더십을 발휘해 반드시 원만한 당·청 관계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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