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그리스의 구제금융 관련 협상이 타결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얼마 전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국민투표를 통해 국제채권단의 최초 협상안 반대를 유도함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더니, 강경파 야니스 바루파키스 대신 온건파로 분류되는 유클리드 차칼로토스로 재무장관을 교체했다. 이후 79억 유로 규모의 당초 개선안보다 더 강도가 높은 130억 유로 규모의 긴축안을 제출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오히려 논란이 됐다. 진정성과 신뢰성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는 국민투표로 인해 혼란을 초래한 데 대해 완전히 백기(白旗)를 들고 유로존의 요구를 수용하는 수모를 당했다. 특히, 그리스 국유 재산을 독립된 펀드에 편입해 운용하는 등의 조항을 수용한 점은 예상치 못한 모습이다.
미합중국에 속한 뉴욕주와 플로리다주는 같은 돈 달러를 쓴다. 유로존에 속한 독일과 그리스도 같은 돈 유로를 사용하고 있다. 양쪽 다 통화동맹이 맺어져 있다. 그런데 미 연방정부는 뉴욕주에서 걷은 세금으로 플로리다주를 지원한다. 재정동맹이 맺어진 셈이다. 그러나 유럽은 다르다. 독일에서 걷은 세금을 그리스에 직접 지원하는 메커니즘은 없다. 유럽안정기금이 있기는 하나 규모와 역할이 제한적이다. 유럽합중국도 없고 유럽연방정부도 없다. 만일 재정동맹까지 맺고서 유로화가 출범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독일에서 걷힌 세금이 그리스로 지원되면서 그리스의 부채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동시에 그리스의 세출이나 국가채무 수준에 직접적 제약이 주어지면서 그리스 채무는 미리 통제됐을 것이다.
좀 더 다양한 준비와 세심한 시나리오가 없이 같은 돈을 쓰기 시작하면서 문제는 커졌다. 더구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수준을 각각 국내총생산(GDP)의 3%와 60% 이내로 유지한다는 조항은 독일과 프랑스도 성실하게 지키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원칙이 형식적인 규칙으로 전락하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 것이다.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시행되는 경우 이것이 신호탄이 돼 유로존 붕괴로 이어지면 현재의 유로존 지도자들은 유럽통합 저해 세력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다. 또한, 그리스 국민도 마찬가지다. 빚 탕감을 원하지만 유로화는 포기 못한다. 사실 기축통화를 사용한다는 점은 엄청난 특혜다. 유로존 국가들끼리 같은 돈을 쓰면서 환율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우선 매력적이다.
그렉시트가 단행되면 드라크마가 엄청난 규모로 평가절하되면서 만성적 불황에 시달릴 것이다. 제조업이 거의 없다시피 한 현실에서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유로화를 벌기도 힘들다. 유로화 부채를 드라크마로 환산하면 천문학적 금액이 되면서 몇 세대를 갚아도 다 갚기 힘들 것이다. 또한, 드라크마는 기축통화가 아니다 보니 그리스는 언제 외환위기를 당할지 모르는 비기축통화국으로 전락하게 된다.예상을 뛰어넘는 막판 그리스의 행보는 그렉시트를 피하기 위한 고육책 내지 러브레터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긴축안이 통과되면서 당분간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이슈는 수면 아래로 잠복할 것이다. 애초 잘못된 결혼이었지만 한동안 같이 살다가 갈등이 불거져 이혼을 하려 해도 이혼에 따른 부담이 너무 커서 헤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당장 헤어지지 않고 계속 같이 살려면 갈등의 골을 빨리 메우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상황이 다시 악화할 경우 그렉시트 이슈는 더욱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규모나 수준이 맞지 않는 국가들끼리 ‘하나 된 유럽’ ‘평화로운 유럽’의 이상을 실현한다는 차원까지 고려해 같은 돈을 쓰는 데 따른 비용을 회원국들과 전 세계가 톡톡히 지불하고 있다. 지역 통화 통합이 가진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논의는 당분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최고급 ‘올리브 열매’를 수출하면서도 최고급 ‘올리브유’는 수입을 해야 하는 제조업 부재, 그리고 지나치게 후한 연금으로 대표되는 포퓰리즘적 경제정책 등이 그리스 사태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때 우리도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서두르면서 포퓰리즘적 정책들은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는 지혜를 길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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