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최근 산악관광진흥구역 제도를 도입해 보전산지, 보존국유림, 산림보호구역 등의 개발 제한을 완화하기로 했다. 허용 대상은 호텔·리조트 등 숙박시설과 상업시설, 스포츠·위락시설, 문화·휴양시설 등이다. 다만, 난개발을 방지하기 위해 3만㎡ 이상 부지에만 허용한다. 앞으로 개발 제한이 완화되면 우리나라 산들도 다가가기가 쉬워질 것이다.
다만, 이번 정부의 발표를 접하면서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경춘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주변에 흩어진 산 중턱에 개발하다 방치된 채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누런 절개지(切開地)들이다. 그리고 생뚱맞은 형태와 색상으로 녹음 짙은 산 중턱에 어울리지 않게 자리잡고 있는, 도시에나 있을 법한 대형 건물들이다. 그런 난개발이 또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떨쳐버리기 힘든 게 현실이기도 하다.
얼마 전, 세 아이를 대학에 보내느라 10여 년을 고생한 아내와 함께 처음으로 둘이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나흘 동안 이탈리아 알프스 산악 트레킹이 포함돼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여행을 떠나던 날 공항에서 함께할 여행팀을 만났다. 60∼70대가 다수 포함돼 필자가 젊은 축에 속하는 그룹이었다. 그래도 알프스 산악 트레킹인데 과연 연세 많은 분들과 아무런 문제 없이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독일 뮌헨에서 시작된 여정은 4일째로 접어들면서 이탈리아 알프스의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선택된 나흘 동안의 산악 트레킹이 시작됐다. 하루 3∼4 시간 예정이었던 트레킹은 연세 많은 분들을 고려해 구간을 짧게 조정했음에도 5∼6시간이 넘기가 일쑤였다. 어떤 날은 해발 3000m 가까운 산정상 바로 아래 지점까지 버스로 위험한 곡예를 하듯 올라가 트레킹을 하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하산길에 힘겨워하는 노인들만 모시고 산악지대를 거미줄처럼 연결해 놓은 곤돌라를 타고 먼저 내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즐길 풍광이 함께하는 동안만큼 속도가 나지 않아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탈리아 알프스가 주는 아름다운 풍광은 자연의 풍광뿐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얹은 인공물들이 조화를 이루는 또 다른 풍광이었다. 고산지대의 농가와 창고들이 어우러진 초원, 분지 지역에 넓게 퍼진 갈색 지붕의 휴양도시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움, 벼랑 위에 자리잡은 중세 성곽이 주는 환상도 있었다. 그런 아름다움을 걸으면서뿐만 아니라, 케이블카를 타면서, 버스를 타면서 즐길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 점은 산이라는 대상이 그저 바라보는 금단의 영역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목적지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젊은 친구들은 자전거를 타고 2000m가 넘는 준령을 넘기도 하지만, 걸음이 불편한 노인들은 버스를 타고 올라가 산이 주는 선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 그러면서도 자연 훼손이라는 멍에를 짊어지지 않고 이용할 수 있게 만든 곳이 이탈리아 알프스였다. 우리의 개발 제한 완화에 좋은 모델이다.
그동안 다가가기 힘든 산악지대를 좀 더 많은 사람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결코 나쁜 방향이 아니다. 하지만 주변 자연과 조화가 이뤄지지 않는 산악지대 개발은 결코 허용해선 안 된다. 실패하면 흉물로 남을 무분별한 개발을 허용해서도 안 된다. 경관 관리를 위한 노력과 무책임한 개발을 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주변 자연의 아름다움에 활력을 더할 수 있는 인공미가 가미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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