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을 설계한 사람들 / 폴 케네디 지음, 김규태·박리라 옮김 / 21세기북스
‘젊은 알렉산더가 인도를 정복했다. 오로지 혼자서 해 낸 것일까?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무찔렀다. 그의 곁에는 요리사가 한 명도 없었을까.’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1935년 많은 역사책을 읽고, 책의 대부분이 위대한 인물과 관련됐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은 한 노동자를 상상하며 쓴 시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중 일부다.
‘강대국의 흥망’(1987)으로 유명한 미국 역사학자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2차 세계대전 승리의 역사를 재구성한 ‘제국을 설계한 사람들’을 이 시로 시작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알렉산더는 혼자 힘으로 인도를 정복하지 않았고, 카이사르의 요리사는 제 역할을 했다는 것. 2차 세계 대전의 승리 역시 위대한 지도자, 특출한 전략가 한두 명이 이끈 것이 아니며 미국 경제력과 기술력 때문에 승리는 시간문제였다는 단순화는 더더욱 경계한다는 뜻이다. 이들 대신 저자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들은 중간 관리자(군인), 발명가, 과학자, 기술자, 전략가들. 공통점을 찾자면 각종 문제를 해결하며 나아간 ‘문제해결자’이다.
저자는 2차 세계 대전을 수많은 전역에서 다양한 수단이 총동원된 ‘충돌’로 봤다. 이 충돌의 판 위에서 여러 사람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성과들이 쌓여 승리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책이 특히 주목하는 시기는 연합군 수뇌부가 카사블랑카에 모여 추축국을 패퇴시킬 청사진을 마련한 1943년 1월부터 1944년 6~7월까지 18개월 동안이다. 이 18개월 동안 연합군은 난제를 풀고 전세를 뒤엎어 승리의 기세를 잡았다. 당시 연합군 앞에 놓인 다섯 가지 난제는 이렇다. 독일 중형 잠수함 U보트를 막아 대서양 항로를 확보하는 것, 독일 함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제공권을 확보하는 것, 적의 해안에 군대를 상륙시키는 것, 동부전선에서 빠르게 확장하는 독일군을 저지하는 것, 그리고 지리적으로 먼 일본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책은 이 다섯 난제를 중심으로 숱한 군인, 기술자, 발명가, 암호전문가, 과학자들이 어떻게 노력하고, 성과를 쌓아가며 승리를 향해 치달아갔는지를 보여준다. 한 사람의 리더에 집중하지 않고 때로는 너무 많은 사람의 너무 많은 성과를 나열하다 보니 읽기의 집중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롤스로이스 엔진이 어떻게 전투기 주행거리를 늘렸는지, 괴짜 남학생의 머릿속 단초가 어떻게 헤지호그 박격포로 이어졌는지, 양측의 암호 전쟁은 어땠는지 등 흥미로운 역사가 끝없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부분은 박진감까지 넘친다. 이 역시 상륙 작전뿐 아니라 역사가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상륙전 준비 과정에서 활약한 해결자에게도 많은 분량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상륙작전 전에 해결해야 할 장애물 제거 문제를 푼 ‘문제 해결사’는 처칠이 발탁한 퍼시 호바트 소장이었다. 그는 기존 탱크를 다양하게 개조했다. 바닷가로 몰고 갈 수 있도록 아래쪽을 부풀린 수륙양용 탱크, 거대한 금속 체인으로 모래를 휘저어 적의 지뢰를 폭파시킬 수 있는 지뢰제거전차, 큰 철사절단기나 불도저용 날이 달린 탱크, 교량용 목재를 싣고 다니며 장애물을 통과할 수 있게 한 전차, 다른 탱크들을 위한 경사면 역할을 하는 탱크 등 기갑전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성과다.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과 기술, 열정과 노력, 실패와 성공이 있었는지, 또 필연과 우연은 어떻게 얽혀 들어갔는지를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이들 해결자들을 스티브 잡스에 비유했다. 이들을 연결하는 고리는 ‘트위커’(tweaker· 발명가의 발명을 개선해 완벽하게 만드는 사람)다. 2011년 잡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경영사상가 말콤 글래드웰은 잡스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 엉성한 발명품과 부족한 통찰력에 살을 붙이고 지속적으로 개선한 트위커라고 했다. 2차 세계 대전의 승리를 이끈 문제해결자들 역시 기존 기술, 과학, 전략에서 한 걸음, 때로는 반걸음 나간 트위커라는 설명이다.
저자는 이렇게 위대한 지도자 중심의 역사를 넘어서지만 이들 해결자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지도자의 역량이라고 평가한다. 전쟁 속에서도 이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알아보고, 자유로운 의사 개진을 허용했고, 관습을 넘어선 리더십과 격려 문화가 있었기에 승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책은 다중의 관점에서 본 2차 세계대전사이며, 공식 역사를 풀어헤쳐 그 뒤에 자리한 무수한 열정을 드러낸 낙관적 역사서이자,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전략 계발서이기도 하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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