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선 / 사회부장

‘영애 박근혜 양’ ‘영식 박지만 군’. 박정희 시대를 거쳐 온 이들은 당시 언론에서 흔히 썼던 이 표현을 기억할 것이다. 영애(令愛)와 영식(令息)은 남의 자녀를 높여 부르는 범칭인데, 많은 이들이 대통령의 딸과 아들에게만 쓰는 것으로 여겼다. 통치자의 막강한 카리스마가 한 시대의 언어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 경우다.

영식으로 불렸던 박지만 EG 회장은 1958년생, 즉 ‘58년 개띠생’이다. 베이비붐 세대인 58년 개띠생들은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관통했다는 연대감을 갖고 있다. 가난, 반공, 유신, 경제 기적, 중·고교 무시험 입학, 신군부 쿠데타, 6월 항쟁, 외환위기, 명퇴 등이 이들이 살아온 세월의 키워드다.

이들과 같은 해에 태어났으나 박 회장의 시간은 특별했다. 5세 때 청와대에 들어가 21세 때까지 대통령의 외아들인 ‘영식’으로 대접받는 삶을 누렸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잇달아 흉탄에 잃는 아픔을 겪고 청와대를 나와야 했다. 그 후 정신적 방황을 하며 향정신성 약물에 의지함으로써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기업인으로 변신해 중견 기업 회장으로 우뚝 서는 저력을 보여줬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박태준 전 포철 회장이 도와줬다고 하니, 그의 재기는 영식 시절과 끈이 닿아 있는 셈이다.

기업인으로 살고 있는 그가 청와대 권력과 다시 얽히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오는 21일 강제 구인돼 재판정에 서는 처지가 된 것이다. 법원은 ‘청와대 문건 유출’ 재판에 그를 증인으로 소환했으나 네 차례나 출석을 거부해 구인 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12월 같은 사건의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두한 바 있다. 문건 유출과 관련, 그와 권력 암투를 벌였다는 루머의 당사자인 정윤회 씨가 앞서 검찰에 나왔다. 정 씨는 이때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반드시 알아내겠다”며 장광설을 토했다. 반면 박 회장은 정제된 말투로 “사실대로 얘기하겠다”라고만 했다. 그의 모습은 국민 시선을 무겁게 여긴다는 느낌을 줬다.

그랬던 그가 법원 출석을 거듭 거부했다는 소식은 의아스럽다. 21일 그가 다시 출두를 거부함으로써 검찰 수사관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영장 집행에 협조하고 순순히 법정에 가서 증인 의무를 다하기 바란다. 그렇게 해야 그의 주장, 즉 권력 암투설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건 유출 건 이외에 그가 정치권력과 연계돼 풍문의 주인공이 된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동생인 그와 거리를 두며 가혹하리만큼 관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 스스로 처신에 주의한 덕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는 언제나 임기 후반에 터졌다. 김영삼정부 이후로 역대 정권이 모두 그랬다. 특히 노무현정부 때는 ‘봉하대군’이라 불렸던 대통령의 형이 비리 게이트에 연루됐다. 이명박정부 때의 ‘영일대군’ 비리도 통치자의 형이 저지른 것이다.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임기 초반엔 권력형 부패를 근절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형에게 들러붙는 권력의 파리떼를 어쩌지 못해 국민에게 비리 공화국이라는 치욕을 안겼다.

이번 정권에서는 이 부끄러운 역사를 단절해야 한다. 박근혜정부에 기대할 게 없다고 하는 이들도 박 대통령이 자신의 친인척 비리만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개 동의한다. 대통령의 의지가 굳다는 것, 미혼으로 자녀가 없다는 것 등이 신뢰의 근거로 제시된다. 내달이면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는 박 대통령이 이 신뢰를 지켜가려면 주변 인물들이 도와줘야 한다.

누구보다 박지만 회장이 앞으로 2년 반 동안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살겠다는 각오로 근신 또 근신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동생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산다는 게 억울하겠지만, 최고 권력과 통하려고 접근하는 자들을 단호히 쫓아내야 한다. 자신에게 단물을 바치겠다는 자들을 멀리한다는 게 어찌 쉬울까마는 꼭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게 개인 명예뿐만 아니라 나라의 품격을 지키는 길이다. 철권통치를 하면서도 친인척 비리는 철저히 막았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신적 유산을 잇는 일이다. 또한 동시대를 살며 이 나라를 이만큼 만들어낸 58년 개띠생들에 대한 ‘영식 박지만’의 예의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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