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윤고은의 ‘구보와 걷는 하루’
한 사내가 걷고 있다. 이미 정오가 지난 시간이지만 그는 조금 전에야 아침밥을 먹고 제집 문을 밀고 나왔다. 그는 전차에 올라타 몇 구간을 흘러가거나, 선로를 가볍게 횡단하거나, 다방에 가서 벗을 기다린다. 그리고 자정이 넘어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본의 아니게 ‘트루먼쇼’의 주인공처럼 되어버린 그 사내가 소설가 구보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소설가 구보의 하루를 통해 1930년대의 서울을 보여주는데, 선택된 구보의 하루가 유독 특별한 건 아니다. 마치 수박에 세 번 칼집을 내서 도려낸 삼각형의 샘플처럼, 많은 날 중에 하루일 뿐. 구보에게는 일상이라고 하나, 그의 어머니 입장을 고려하자면 이런 식으로 서술될 수도 있다.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스물여섯 살짜리 아들은, 늙은 어머니에게는 온갖 종류의, 근심, 걱정거리였다. 우선, 낮에 한번 집을 나서면, 아들은 밤늦게나 되어 돌아왔다.’
구보의 하루는 1934년의 것이지만, 80년이란 시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치 어제 놓친 연인을 쫓듯 구보가 움직인 경로를 따라 걷는다. 조급증을 앓는 대한민국에서 1930년대의 흔적들은 오래된 피부 각질처럼 이미 탈락하였다. 구보가 산책을 시작하는 지점이자 작가 박태원의 실제 집이기도 했던 그 ‘다옥정 7번지’만 보더라도 이미 사라진 주소다. 그 집이 있던 자리엔 길이 들어섰다. 절반은 찻길, 절반은 물길이다. 청계천변의 한국관광공사 건물이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구보의 이웃집쯤 되는 셈이다. 각자의 용무로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이미 증발한 집, 다옥정 7번지를 상상하는 것은 묘한 희열을 준다. 이 도시 아래 어느 지점에 묻혀있을 비밀스러운 이야기의 진맥을 가만히 짚어보는 기분이랄까. 구보의 산책로를 따라 걷는 재미는 바로 이런 데 있다.
다옥정 7번지까지 오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면 종각역 5번 출구에서 내렸을 텐데, 소설의 도입부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런 순서가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구보의 동선이 잘 계산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의 진행대로 따라 걸으면 그의 산책로가 꽤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데, 중언부언하듯 반복되는 구간들이 있어서다. 오일러의 한붓그리기 공식을 적용해본다면 초장에 벌써 실패다. 구보는 같은 찻집에 두 번씩 가고, 집 근처를 또 지나가는가 하면, 어느 지점에서는 갈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갈팡질팡하기도 한다. 사실 갈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닐 거다. 처음부터 목적지란 게 없었으니까 말이다. 소설에 표현된 대로 ‘처음에 그가 아무렇게나 내놓았던 바른발이 공교롭게도 왼편으로 쏠렸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나아갈 뿐인 거다.
화신상회가 있던 자리에는 이제 종로타워가 있다. 그 맞은편에는 보신각이 오래된 증인처럼 서 있다. 구보가 그 앞에서 올라탄 건 동대문행 전차다. 서울의 마지막 전차가 사냥된 고래처럼 밧줄에 묶여 잠든 것이 이미 1968년의 일이다. 이제 달리는 전차도 선로도 없지만 옛 전차를 닮은 트롤리버스가 다닌다. 구보의 산책로와 어느 정도 겹치는 구간을 달리고 있으나 이 산보객에게는 너무 비싸다. 구보라면 그의 선택은 당연히 지하철일 것이다. 가장 저렴하고, 반복적이면서 사람들을 관찰하기 좋은 교통수단이니까. 모두가 손바닥 안의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이 기이하고도 일상적인 풍경에서 구보가 어떤 표정을 읽어낼 것인가, 궁금하기도 하다.
전차 안에서 구보는 여러 사람을 관찰하고 그 단상을 머릿속이나 대학노트에 몇 줄로 기록한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행인 중에는 그가 지난해 여름에 만났던 한 여자도 포함되어 있다. 인연이 될 뻔한 여자를 길에서 다시 발견했다는 것은 특별할 것 없는 하루 안에 뭉뚱그려 집어넣기엔 분명 모난 사건일 것이다. 그러나 구보는 그 여자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간다. 적당히,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후회와 체념 사이를 오가면서 구보는 이동한다. 구보의 전차 여행은 조선은행 앞에서 멈춘다. 지금의 한국은행 본점이 있는 자리다. 구보는 단골다방인 ‘낙랑파라’로 간다. 지금 그 다방이 있던 소공동 부근엔 몇몇 규격화된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구보가 이 시대에 온다면 어느 도시든 같은 간판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의 많은 건물이 도로에 포박당해 있고, 그 위로 끊임없이 자동차들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도 충격적일 거다. 지난 80년을 빨리감기 하면 무수히 많은 블록이 지면 위에 떨어지는, 테트리스 게임처럼 느껴질 지경인데 2015년의 구보는 길을 잃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그런 방식의 미로는 그가 원하는 것일 테고.
지금 이 거리 한복판에는 원형의 분수대가 있고, 그 앞에서 종종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다. 왼쪽으로는 옛 조선은행(한국은행)이, 오른쪽으로는 이상이 ‘날자, 날자, 날자꾸나’ 하며 스스로를 부추기던 미쓰코시백화점(신세계백화점)의 옥상이 있고, 그 옥상 위에는 루이스 부르조아의 거미 조각-마망이 있다. 도심을 내려다보는 거미의 펼쳐진 다리를 언젠가 분수 같다고 느낀 적이 있다. 오늘은 어떤 낚싯대처럼 보인다. 무엇을 낚는 것인가. 그 너머로는 송곳처럼 솟아 있는 N타워도 보인다.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소설 속 경성우편국이 있던 자리. 오늘날엔 서울중앙우체국이 들어서 있다. 1930년대의 경성우편국은 3층 건물이었지만, 지금 ‘포스트타워’라고 불리는 저 건물은 외부에서 층을 가늠하기 쉽지 않을 만큼 거대하다. 나는 저 건물의 생김새를 좋아한다. 이상이 호소했던 가려움에 대한 반응처럼 보이기도 하고, 곧 출동할 마징가제트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오늘 같은 여름밤엔 또 다르다. V자 모양으로 절개된 저 건물의 골격과 불 켜진 창문들을 보라. 쇄골 중앙에서부터 배꼽까지 지퍼로 연결된 옷을 입은 여인이 그 지퍼를 어느 정도 열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쭉 잡아당기면 더 절개될 것처럼, 도발적인 밤이다.
문학이 내비게이션이 되는 여정에서 좋은 점은 꼭 지시대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건 전자제품 매뉴얼이나 제과제빵 레시피와 다르다. 주의사항이라든지 금기, 지켜야 할 정량 같은 건 없다. 구보의 여정은 이제 서울이란 도시의 여행법처럼 유명해졌지만, 그의 동선만큼이나 중요한 건 그 내면의 경로를 짐작해보는 것이다. 80년 사이에 길은 변했어도 소설 속 구보는 세월에 낡거나 늙지 않았다. 우리는 충분히 한 소설가가 이 거리를 걷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복잡하고 답답한 시대를 걷던 한 청년의 예민한 촉수를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대도시를 걷는 한 개인을 상상할 수 있다. 도시가 개인을 다루는 습관적인 방식-소외를 상상할 수 있다. 그의 산보에 동참한다는 건 행인들의 표정을 읽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 여름밤의 어디쯤에서 다른 산책자와 마주칠지도 모른다. 도시의 보이지 않는 혈관을 진맥하는 듯한, 그런 사내 말이다. 잠시 방심하는 사이, 내 표정도 그의 대학노트에 한 줄 메모로 남는다. 이 도시 서울에서 우리는 그렇게 적당히 노출되고 적당히 관찰하며, 또 적당히 잊히며 살아간다. 서로의 지분을 아주 조금씩만 탐하면서, 행인과 행인으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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