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경기 광주 현대글로비스 ‘분당 중고차 경매장’에서 중고차 입찰에 참여한 매매업자들이 전광판에 뜬 차량 가격 등을 보며 차량 확보를 위한 응찰가를 고민하고 있다.
출품 車 주행거리·사고 등 확인 54개 등급 ‘성능점검표’ 작성 ‘속여팔기’ 위험성 원천 차단 중고차 거래 4년새 20% 증가
매매업자 응찰기 버튼으로 참여 한번 누를때마다 5만원씩 호가 빠른 진행으로 ‘담합’ 불가능
“1300만 원 넘으면 어차피 손해야. 사전에 주문한 고객이 없으면 저런 매물은 굳이 살 필요가 없는 거지.”
지난 14일 오후 경기 광주시 현대글로비스 분당 중고차 경매장. 중고차 매매상인 김정식(49) 대구보배상사 사장은 손에 든 응찰기를 내려놓고 “어떤 생각으로 경매에 임하는지 서로 파악하고 있다.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만큼 모두 프로”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 사이 전광판에서는 김 사장이 포기한 2011년식 법인 차량 쏘나타 매물의 가격이 치솟고 있었다. 1100만 원에서 시작한 이 차의 가격은 30초도 안 돼 1350만 원으로 뛰었다. 매매상인들은 “2명만 계속 경매가를 올리는 걸로 봐서 해당 차종에 대한 주문 고객을 미리 확보한 딜러들끼리 경쟁이 붙은 것 같다”고 웅성거렸다.
이 장면은 ‘레몬 마켓’(미국 속어로 겉과 속이 다른 불량품이 판치는 시장)으로 불렸던 중고차 시장이 얼마나 변했는지 변화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투명한 거래 과정 덕분에 매매업자들은 일시적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그 결과 업자 입장에서는 속아서 비싸게 중고차를 매입하는 위험이 낮아졌고 이 때문에 중고차를 비싸게 속여 팔 수밖에 없다는 업자들의 항변도 명분을 잃었다. 동시에 공개된 경매를 거치다 보니 순진한 차주들에게 중고차를 싼값에 사들이는 업자들의 ‘후려치기’도 사라졌다. 이 같은 분위기와 맞물려 우리나라 중고차 거래 건수는 4년 새 20% 이상 늘어나는 등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때 ‘가족끼리도 속고 속이는 곳’으로 인식된 음지의 중고차 시장이 경매장을 통해 양지로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는 정보의 공정한 공개가 첫손에 꼽힌다. 현대글로비스 경매장의 경우 차주가 차를 내놓으면 매입 직원들이 연식, 주행거리, 용도, 조향장치, 사고 여부, 각종 장치 등 80여 가지 항목을 꼼꼼히 점검한다. 이후 전문 컨설턴트의 희망가에 소유자가 합의하면 경매 출품이 결정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최고 A-9부터 최저 F-1까지 54개 등급으로 매겨진 성능점검표다. 경기 분당·시화, 경남 양산 경매장에서 1주일에 각각 한 번씩 열리는 경매를 앞두고 중고차 매매업자들은 성능점검표와 함께 경매장 주차장에 주차된 중고차량을 자세히 살핀다.
수요·공급 법칙이 정직하게 반영되는 경매 과정도 투명성 확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이날 오후 1시부터 350석 규모의 강당에서 진행된 경매에서는 희망가보다 30만~50만 원 낮은 시작가로 출품된 603대 차량 정보가 순서대로 전광판에 떴다. 중고차 매매업자들은 손에 쥔 응찰기를 책상 아래 숨긴 채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한 번 누를 때마다 5만 원씩 호가가 올라갔고 이때마다 전광판에는 호가를 부른 사람이 각각 3명 이상, 2명, 1명이라는 의미로 빨강, 노랑, 초록 불이 켜졌다. 낙찰은 3초간 아무도 버튼을 누르지 않고 최종 호가가 희망가 이상일 때 이뤄진다. 하루 평균 낙찰률은 60% 이하로, 이날은 54.1%를 기록했다.
관심이 쏠린 것은 평균적으로 30초 남짓한 사이 차 한 대의 경매가 모두 완료되고 바로 다음 차량 경매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업자들 간의 담합 등 꼼수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경매장이 처음 출범한 지난 2001년 1만8대에 그쳤던 출품 중고차 수가 지난해 7만7198대에 달할 정도로 시장의 호응은 좋은 편이다.
경매 시스템 외에 깨끗한 거래를 앞세운 대형 매매단지 건설도 중고차 인식 변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 2011년 인천에 세워져 중고차 백화점 역할을 하는 동화엠파크가 대표적이다. 지난 16일에 3번째 단지 착공에 들어가 현재 7000대에서 2016년 10월에는 1만 대 규모로 차량 전시를 늘릴 예정이다. 이 회사는 폭리를 취하는 중고차 매매상사를 내보내고 자체적인 성능시험장을 마련해 신뢰 확보에 나서고 있다. 어둡고 불편하다는 기존 중고차 매매단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업자들의 호객 행위를 전면 금지했고 레스토랑, 카페 등 젊은 취향의 편의 시설을 입점시켜 소비자들과 심리적 거리를 좁혀나가는 점도 특징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변화의 바람이 중고차 중개업에 뛰어든 ‘큰손’들의 경쟁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현대글로비스 외에 렌터카 업체인 롯데렌탈과 AJ렌터카도 투명한 거래를 표방하며 지난해 중고차 경매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까지는 이들의 경쟁이 중고차 매매 신뢰도를 높이고 중고차 수요를 늘리는 시장 확대의 선순환 결과를 낳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