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예술의 발명 / 래리 샤이너 지음, 조주연 옮김 / 인간의기쁨

“순수예술이라는 범주는 때가 되면 사라질 수도 있는 최근 역사적 구성물이다.”

책을 한 줄로 말해 주는 문장은 이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미술, 문학, 고전음악 등 순수예술(fine art), 혹은 영어 대문자 ‘A’로 쓰는 ‘예술(art)’은 겨우 200년 전에 유럽인들이 ‘발명’해낸 것일 뿐이다. 그전에는 훨씬 광범위하고 실용적인 예술 체계가 있었다. 순수예술은 18세기에 여기서 분리됐고, 이후 우리는 그 분리를 극복하고자 줄곧 모색해 왔으나 아직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의 ‘샘’(1917). 뒤샹은 소변기를 순수예술로 변모시켜 예술과 생활 사이의 구분을 지워버리고 순수예술의 토대를 무너뜨리고자 했다.
마르셀 뒤샹의 ‘샘’(1917). 뒤샹은 소변기를 순수예술로 변모시켜 예술과 생활 사이의 구분을 지워버리고 순수예술의 토대를 무너뜨리고자 했다.

저자 래리 샤이너(81)가 18세기를 명확히 지목한 것을 빼고, 이런 주장이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이미 미학사에서 제기됐고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일리노이대(스프링필드) 철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개념’이 아니라 손에 잡힐 듯한 사회사와 예술사의 ‘사례’들을 통해 18세기에 나타난 순수예술의 ‘발명’을 보여준다. 저자는 10년의 자료조사와 10년의 집필과정을 통해 2001년에 이 책을 펴냈으며, 책은 여전히 미학과 예술사학 분야에서 주요한 저술로 인용된다. 이번에 번역된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그동안 논쟁이 된 부분에 대해 길게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주제는 예술가뿐 아니라 애호가들도 궁금했던 내용이다.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상설전시관을 찾아보면 미술이 얼마 전까지 보던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당황한다. 미술이나 문학, 고전음악은 이미 죽었다는 얘기들도 한다. 도대체 이런 혼란은 어디서 유래됐고 무얼 지향하는지 이 책은 설명해 준다.

예술(art)이란 단어는 라틴어 ‘ars’와 ‘techne’에서 유래했다. 애초부터 예술과 기술은 하나였던 것이다. 예술은 말 조련, 시 짓기, 구두 제작, 꽃병 그림, 통치술 등 인간의 모든 기술을 뜻했고, 예술과 반대되는 개념은 자연이었다.

예술가의 자율적 창조란 개념은 지극히 현대적인 것일 뿐이다. 대개 예술작품은 후원자의 요구에 의해 제작됐다. 예컨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성당에 그린 ‘천지창조’는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주문한 것이고, 셰익스피어의 작품들도 후원자의 구체적인 요구로 만들어졌다. 계약서에는 흔히 내용·형식·재료가 자세하게 명시됐다. 예술 제작은 여러 사람의 협동 작업이었으며, ‘예술가’와 ‘장인’은 분리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18세기 말에 이르자 시, 회화, 조각, 건축, 음악 등이 순수예술이라는 ‘고귀한 범주’로 분리됐고, 이 범주는 수공예나 대중예술(만담, 대중음악 등)과 대립했다. 이제 예술가는 순수 예술작품의 창조자를 의미했고, 장인은 유용하거나 재미있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단순제작자였다. 단지 분리가 아니고 개념·관행·제도 등 예술 전체가 다른 체계로 대체됐다. 기능적으로 쓰였던 예술작품은 그전에는 없던 연주회장이나 미술관, 극장, 독서실에서 조용하고 경건하게 주목받게 됐다. 예술을 창조로 보는 새로운 관념이 생겼고, 고차원의 진실을 드러내거나 영혼을 치유하는 초월적인 정신적 역할까지 예술에 주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주요인은 예술의 후원자가 ‘시장(市場)’과 중류층 ‘대중(大衆)’으로 대체된 것이다. 소위 본격적인 자본주의화의 영향이다. 프랑스의 문학사학자인 아니 베크는 후원 제도에서 시장으로의 이행을 가리켜, 사용가치에서 교환가치로의 전환 때문에 일어난 ‘구체적 노동’에서 ‘추상적 노동’으로의 이행이라고 설명한다. 후원자에 따른 구체적인 주문생산에서 시장으로 던져지는 전반적인 창조성만 지닌다는 의미다. 이런 변화로 순수예술, 예술가, 미적인 것이라는 새로운 개념들이 만들어지고, 미술관, 음악회, 저작권 등 새로운 제도가 생겨났다. 이를 알 때 현대적 예술체계의 온전한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순수예술과 수공예의 분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한 세기 반에 걸친 지난한 노력이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현대의 모더니즘과 반(反)예술을 이해하는 열쇠다. 예술가들은 유용한 예술과 일상적 즐거움을 경시하는 생각에 도전했으며, 예술이 삶에서 분리돼 대립적 존재로 남아 있는 것을 극복하고자 했다. 순수예술의 세계 역시 이러한 저항들을 포섭하며 한계를 넓혀 왔다. 사진, 영화, 재즈 같은 새로운 유형의 예술을 받아들였고, 심지어 존 케이지의 소음까지 포용함으로써 순수예술의 경계선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이것이 현대예술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어려운 이유이고, 순수예술이란 범주가 언제까지 갈지 확신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책은 2007년에 번역돼 나왔으나 절판됐고, 이번에 새롭게 번역됐을 뿐 아니라 각주 등 공부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자료를 모두 실었다.

엄주엽 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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