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규 /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

지난해부터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에 중대한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급속히 증가하는 가계부채에 대한 국내외의 전문가·전문기관들의 우려가 있었고, 급기야 정부는 지난 22일 ‘가계부채에 대한 종합 관리방안’을 내놓게 됐다. 지난해부터 한국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두 번에 걸친 금리 인하 정책(政策)을 시행했고 침체됐던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정부의 정책이 있었지만 예기치 못한 메르스 사태의 여파 등으로 경제는 연속 5분기 0%대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어려운 형편이다. 이러한 경제 현실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가계부채에 대한 대책이 나왔다는 사실은 현재 가계부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보여준다.

2012년 한국은행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말 522조 원이었던 가계부채가 2011년 초 801조 원으로 이후 급속히 증가했다. 가계부채의 상환 능력을 보여주는 가계부채 대비 가처분소득의 비율도 129%에서 155%로 크게 증가해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상태였다. 그렇지만 보고서에서는 가계부채의 상환 능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상위 소득계층에 가계부채가 집중돼 있기 때문에 단기간 대규모 부실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판단을 내놓았다. 그러나 2014년 부동산시장의 부양을 통한 경기회복을 기대해 추진했던 정부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의 완화 정책으로 인해 상황이 바뀌었다. 가계부채가 1100조 원을 초과하게 됐을 뿐 아니라, 주택담보대출이 2014년 한 해 42조 원 이상 늘었고, 부채 상환 능력이 낮은 계층의 주택담보대출 비율이 가장 빠르게 증가했다. 부채 상환 능력이 짧은 기간에 빠르게 악화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정책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두 측면을 가지게 마련이다. 지난해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한 정책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미 가계부채의 악화를 경고한 바 있었지만, 정부는 경기회복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기대했던 부동산 거래는 증가했으나 경기회복에 미치는 효과보다는 미미했다. 이제는 가계부채의 악화가 오히려 국민경제의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상환능력 심사 개선’을 내놨지만 정부 스스로 지난해의 정책을 뒤엎는 형국이 됐다. 비록 이번 정책이 신규 대출부터 적용된다 하더라도 이미 기존의 정책에 맞춰 대출을 받았던 가계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정부의 정책을 믿고 부응했던 사람들의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현실을 반영하는 실증적 자료와 종합적 분석에 근거한 정교한 정책을 구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부가 내놓은 가계부채에 대한 대책은 과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정책은 가계부채에 대한 종합대책이라기보다는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기존 정책으로의 회귀에 국한돼 가계부채의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가계부채의 상환 능력이 가장 취약한 계층은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 외 부채 상환, 생계비 조달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번 정책이 가계부채의 근본적 문제 해소에 얼마나 효과적일지 의문시된다. 향후 정교한 가계부채 해소를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이 나오지 못한다면, 가계부채 악화로 인한 내수 위축, 소득 위축, 가계부채 악화라는 악순환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폭 넓은 시각에서 마련한 일관성 있는 정책을 통해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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