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집들… 쓰레기 나뒹굴어
“20년전 吉林 시골마을보다 못해”
개혁개방 초기 공업화의 동력서
가동률 미달 과잉설비 대표사례로
2010년 들어 퇴출대상 산업 전락
다 허물어져 가는 적색 벽돌벽에 산발한 여인이 기대어 있었다. ‘눈에 초점이 없는 것이 술이라도 마신 것일까?’ 여인 앞을 지나 모퉁이로 들어서니 앞으로 폭 10m가량의 20도 정도 위로 경사진 언덕길이 나온다. 길 한쪽에는 쓰레기로 가득 찬 물길이 나 있고 그 맞은편에는 곧 허물어질 듯한 집의 대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골목에 행인은 없었지만 분명 빈집이 아니었다. 물길은 보아하니 하수도인 듯했다.
지난 16일 오후 2시쯤 중국 산시(山西)성 다퉁(大同) 인근의 한 탄광 간좡메이예(甘庄煤業)의 부속 마을 모습이다. 중국에서 석탄산업은 대표적인 구조조정 대상이다. 간좡메이예는 중국의 ‘산업구조 조정의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오전 6시 베이징(北京)에서 승용차로 6시간을 달려와 산시 고원을 2시간가량 헤매다 찾은 탄광이었다.
‘환영합니다. 간좡메이예입니다’는 푯말의 글귀를 보고 반가운 마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들어선 탄광촌, 그러나 눈에 들어온 마을 모습은 웃음을 싹 가시게 하는 것이었다. ‘이거 영화 촬영장에 잘못 온 것 아냐?’ 할 정도로 황폐했다.
중국 석탄산업은 80, 90년대 개혁개방 초기 발전을 일궈낸 동력이었다. 기차를 달리게 해 무수한 물자를 실어 날랐고 전력 등 중국 공업화의 동력을 제공했다. 모자란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산시성의 주요 도시들은 도시 호적을 주겠다며 농촌 청년들을 꾀어 광부로 모집해야 했을 정도다.
그러나 2010년 들어 이 석탄산업은 중국 산업구조조정의 정리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초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대거 만들어진 탄광은 이제 중국 산업 설비 과잉의 대표사례로 꼽히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석탄산업과 함께 전해알루미늄(이하 설비가동률 72%), 판유리(73%), 시멘트(74%), 철강(72%), 조선(75%), 풍력발전(67%) 및 태양광발전(57%) 등의 산업들이 정상 수준(85%)을 밑도는 설비가동률로 구조조정 대상이다. 특히 최근에는 스모그 문제까지 겹치면서 석탄산업의 퇴출시기는 빨라지고 있다.
언제나 쉬운 게 ‘지상담병’(紙上談兵·서류로만 전투를 이야기하다)이다. 사양길에 접어든 중국 탄광촌의 모습은 생각보다 처참했다. 간좡메이예 탄광촌의 골목에서 겨우 찾아낸 한 40대 인부에게 묻자, “탄광은 이전처럼 생산은 한다. 그러나 경영은 옛날 같지 않다. 마을에 있던 벽돌 공장도 문을 닫고 사람들도 많이 떠났다”고 무뚝뚝하게 답하고 떠난다. 탄광촌 입구 멈춘 공장은 벽돌공장이었던 것이다.
간좡메이예를 벗어나 남쪽으로 7, 8㎞를 달리자 나오는 것이 산시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퉁메이(同煤)그룹 13호 탄광이 나온다. 산을 뒤덮은 대형 석탄채굴 공장이 있고, 광부와 주민들을 위한 아파트 단지와 학교, 병원 등의 시설들이 과거 화려했던 순간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규모를 자랑하고 서 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마을의 집들이 이미 곳곳이 무너져 내린 채 구조조정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 그나마 퉁메이 그룹은 1949년 설립된 중국 3대 석탄 국유회사 중 하나다. 광산 규모만 총 6157㎢, 매장 석탄도 892억t에 이른다. 그래서 구조조정의 한파에도 그나마 견디고 있는 것이다.
마을의 한 주민은 “1t을 내다 팔면 150위안의 손실을 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 손실을 정부가 메워 겨우 견디고 있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한파에 대한 충격은 규모가 작을수록 크게 받는 모습이었다. 퉁메이 13호 탄광 인근의 우관툰(吳官屯)탄광, 규모가 퉁메이 13호의 4분의 1 정도, 간좡메이예보다는 10배 이상 커 보였다.
주민들에게 탐문한 결과, 우관툰탄광은 광부가 2000여 명에 달하고 생산량은 연간 80만t에 달했다. 규모가 있기 때문인지 광부들이 광구에서 작업을 마친 뒤 공동의 목욕을 하는 공동 시설들은 비교적 깨끗하게 관리됐지만, 주민들이 사는 집들은 간좡메이예 탄광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쓰레기 가득한 골목 집들을 지켜본 차량 운전사 퍄오스푸(朴師傅)는 “20년 전의 지린(吉林) 시골 마을도 이보다 나았다”고 했다.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40대 초반의 아주머니 왕퉁펑(王冬鳳)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마을에 주민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많은 젊은이가 돈을 벌기 위해 떠났다. 이전 7000위안이었던 광부 임금도 6000위안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길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금방이라도 빗물을 쏟아낼 듯싶었다. 차창 넘어 산시의 구릉들이 아득히 멀어지며 간좡메이예에서 보았던 넋을 잃은 여인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치명적인 구조조정의 여파는 과연 중국에만 그칠 것인가? 무거운 질문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산시성 다퉁=글 사진·박선호 기자 shp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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