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평 /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하반기 최우선 국정과제로 지목하고, 집권여당이 총대를 메면서 노동개혁 2라운드가 막이 올랐다. 그런데 정작 지금 키를 쥔 쪽은 정부도, 여당도 아닌 한국노총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두 차례나 국회 부근의 한국노총 천막농성장을 찾아가 허리를 숙였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이곳을 다녀갔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언론에 비치는 횟수도 많아졌다. 한국노총은 지난 4월 이른바 ‘5대 불가 사항’을 앞세워 노사정위원회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온 뒤 대정부 투쟁에 나선 상태다. 여당이 노동개혁에 개입하는 건 뒤얽힌 정책 현안을 ‘정치’로 풀겠다는 뜻이다. 그러자면 협상할 상대가 필요하고 현재 거의 유일한 대안이 한국노총이다. 한국노총 없이 타협의 틀을 짜기 어렵고, 한국노총에 휘둘리면 개혁이 어렵다는 게 새누리당의 딜레마다.

한국노총의 대응은 간단치 않다. 조합원 투표로 파업을 결의하고도 뜸을 들이고 있다. 정부·여당은 노동개혁을 위해 법적 기구인 노사정위 채널의 재가동이 최선이라고 보고, 한국노총과 복귀 조건을 놓고 물밑 대화를 해왔다. 한국노총은 정부 개혁안의 핵심 조항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사전 협의를 거쳐 각각 여야 3당 대표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에게 공문을 보내 국회 내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여의도 노사정위’를 꾸려 논의를 진행하자는 얘기다. 양면전략으로 판을 주도하는 한국노총은 정치권에도 폭넓은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새누리당의 노동시장선진화특위 위원인 김성태·최봉홍 의원, 새정치연합의 이용득 최고위원, 청와대 현기환 정무수석이 모두 한국노총 출신이다.

노동개혁 2라운드가 노사정위를 통해 진행될 수 있다면 좋지만,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노사정위 구도로는 한국노총이 판을 깨고 나간 상황을 연장하는 것밖에 안 된다. 한국노총의 복귀는 곧 정부 개혁안의 후퇴를 전제한다. 그렇다면 국회에 협상 채널을 만드는 것은 차선이 될 수 있다. 어차피 여야가 개입에 나섰고, 노사정 대화를 줄곧 외면했던 민주노총까지 참여할 뜻을 밝힌 마당이다. 이해 당사자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여 제대로 붙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협상 결과가 곧바로 입법으로 연결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단,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노동계 대표를 다양화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10% 정규직 클럽’ 목소리가 근로자를 대변했다. 노동개혁은 이들의 권한과 기회를 나눠 나머지 90% 비정규직·아르바이트·청년·고령자·실업자 등과 공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노동계 대표에게도 발언권을 줘야 개혁의 대의를 잡아갈 수 있다.

둘째, 이슈를 압축할 필요가 있다. 앞선 노사정위 협상에서 다뤄진 의제는 65개나 된다. 그러다 보니 무엇이 쟁점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기여율과 지급률만 결정하면 됐던 공무원연금 개혁과 달리 노동개혁은 임금·근로시간·정년·파견·해고·비정규직 문제 등이 다면적·중층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의제를 5∼10개 정도로 추리면 논점이 선명해지고 타협할 여지도 커진다.

셋째, 공개 토의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 그동안 국민은 노사정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기 어려웠다. 실무협상을 병행하더라도 중요한 의제에 대해선 TV 중계 등을 통해 각자 입장을 생생히 전달하고, 가능하면 국민 의견도 수시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밀실 야합으로 공분을 자초한 공무원연금 개혁의 전철을 답습해선 안 된다.

넷째,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땐 전문가 그룹의 안을 중시해야 한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노사정이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이럴 때는 객관적인 제삼자의 중재안이 결렬보다 나은 선택이 된다. 독일 하르츠 개혁도 노사정 채널이 막히자 전문가그룹 안을 중심으로 추진해 성사시킨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략을 배제해야 한다. 정치권은 여야 구분 없이 양 노총의 ‘조직된 표(票)’를 의식해 친노(親勞) 성향을 보여왔다. 정치인이 낀 개혁은 그래서 어렵다. 그러나 노동개혁을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뤄낸다면 ‘표 정치학’은 달라질 수 있다. ‘표 잃을 각오’로 국가 미래를 위해 사심 없이 임한다면 오히려 다음 선거에서 조직되지 않은 다수 표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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