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된 PC나 냉장고, TV 같은 e-폐기물로부터 나온 회로기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  유엔대학 e-폐기물 감시 보고서·문화일보 자료사진
폐기된 PC나 냉장고, TV 같은 e-폐기물로부터 나온 회로기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 유엔대학 e-폐기물 감시 보고서·문화일보 자료사진
‘선진국 e-폐기물’ 개도국으로 대량 유입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에 따라 전기·전자제품은 현대인의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종류와 양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과거의 냉장고, TV, 세탁기 등 일상생활에 쓰이는 고전적인 전자제품뿐만 아니라 이제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까지 대폭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전기·전자기기 폐기물(e-폐기물)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주로 선진국에서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는 e-폐기물이 중고품 재활용 등의 명목으로 개발도상국으로 유입, 불법적인 방법으로 폐기되면서 이들 국가의 환경 오염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31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중국 등 개도국에서는 공업화와 도시형 생활 방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화학물질 관리나 폐기물 대책은 이런 추세를 뒤따르지 못해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선진국으로부터 재활용 등을 이유로 유입되는 대량의 중고 전기·전자기기는 이런 환경오염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이들 기기에 포함된 재활용 부품이나 원료 물질 등이 부적절한 방법으로 회수되거나 불법 폐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산하 유엔대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전 세계 e-폐기물은 총 4180만t이 발생했지만, 이 가운데 60~90%는 위법한 방식으로 거래 또는 폐기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런 위법 처리의 상당수가 범죄조직이나 자금 세탁과 결탁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에서도 도난·분실 휴대전화를 해외로 밀반출하다 적발된 건수가 지난 2013년 한 해 3000건 이상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최근에는 적발 건수가 감소하고 있다.

일본의 중고 휴대전화 회수율도 e-폐기물이 위법한 방법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추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2014년 일본 통신사업자 전체의 판매점에서 회수된 휴대전화 대수는 기기 변경이나 임의해약 건수 합계 대비 14.6%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일본의 관련 업계에서는 통신사 가입 이외의 사용이나 개인적인 중고품 거래 등이 늘고 있어 회수율이 낮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통신사업자의 영역 밖 어딘가에서 폐기되고 있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위장 중고품으로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는 것도 통신사업자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은 이미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 4개 품목에 대해서는 가전기기재활용법으로, PC에 대해서는 자원유효이용촉진법으로 생산자 책임에 의한 재활용 제도를 구축했다. 따라서 e-폐기물에 의한 환경오염은 우려할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재활용 제도의 범위를 해외로 확대하면, 중고품이나 고철 수출업자를 통해 일본의 e-폐기물을 수입품으로 사들이는 해외의 거래처에 대해서는 재활용 제도 마련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같은 선진국들의 e-폐기물이 개도국으로 넘어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따라서 지난 5월 유해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처분 규제에 관한 바젤조약 체결국 회의에서는 ‘e-폐기물 및 사용이 끝난 전기·전자기기의 국경 이동에 관한 가이드라인(지침)’이 채택됐다. 재활용 목적 수출입의 경우에는 해당 기기가 완전한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검사결과 기록이나 재활용품임을 확실시하는 수출업자의 확인 서류를 첨부하는 등의 내용을 정한 것이다. 또 고장 난 제품을 수출할 경우에는 이를 수리하거나 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폐기물을 적정한 방법으로 관리할 수 있는 수입국 측의 시설과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도 증명해야 한다.

이는 모두 선진국의 e-폐기물이 개도국으로 유출돼 불법적으로 사용되거나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에 일본에서도 이미 시행되고 있는 ‘사용 후 전기·전자기기 수출 시에 관한 중고품 판단 기준’이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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