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일 / KDI 규제연구센터 소장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대런 애시모글루 교수가 하버드대의 제임스 로빈슨 교수와 함께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저서에 따르면 한 국가의 경제적 운명은 그 나라의 정치제도, 경제제도가 얼마나 포용적인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사유재산이 확고히 보장되고 누구나 공정한 경쟁환경에서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발휘하며 본인이 원하는 바를 선택할 수 있을 때 이 경제를 ‘포용적’이라 한다. 이런 경제에서는 연이은 혁신과 창조적 파괴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유도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 등 여러 가지 구조적인 제약으로 인해 잠재성장률의 점진적인 하락이 예상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은 지속적인 창조와 혁신활동밖에 없으며, 이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를 개혁하여 ‘포용적’ 경제제도를 확대하는 것이 정부정책의 핵심에 있어야 함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지난 월요일 필자가 속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규제개혁 시스템 및 정책 만족도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규제개혁 시스템 및 정책에 대한 기업들의 만족도는 5점 만점에 2.92점으로 전년도의 2.70점에 비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의 대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이어서 애당초 좋은 점수가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한 개선이라 할 수 있다. 세부 평가항목에서는 ‘현 정부의 규제개혁 노력’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반면 ‘공무원의 규제개혁 의지’는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규제개혁의 핵심적인 문제점으로 ‘규제담당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과 ‘규제개혁 과정에서의 소통 및 피드백 미흡’이 지적되었다. 이러한 설문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로운 규제를 만들고 기존 규제를 개선하는 것은 결국 공무원의 몫인데, 공무원의 전문성 및 규제개혁 의지에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규제개혁의 성패가 공무원의 역량과 의지에 달려 있다면, 이를 강화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유효한 수단으로는 규제영향분석의 내실화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이후 각 부처로 하여금 규제의 신설, 강화 시 그로 인한 사회적 영향을 분석하여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규제영향분석서가 부실하게 형식적으로 작성돼 왔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규제품질 제고는 물론 공무원의 규제개혁 역량 강화는 요원한 일이다. 현 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규제영향분석서에서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의 필요성과 개입의 형태가 규제이어야 하는 이유를 철저히 소명하고, 규제가 불가피한 경우에는 다양한 규제대안을 설계하고 엄밀한 비용편익분석을 수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한 각 부처가 규제영향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기업 등 피규제 대상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고 있는데, 개별규제에 대한 공무원의 전문성을 높이려면 이러한 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정부가 시범 운영 중에 있는 규제비용총량제 또한 규제의 신설, 강화로 인해 기업 부담이 증가하는 경우 불합리한 기존 규제의 발굴, 개선을 통해 그만큼의 부담을 덜어주도록 함으로써, 공무원의 규제개혁 역량 및 의지를 높이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규제영향분석의 내실화와 규제비용총량제의 효과적인 시행 또한 결국은 각 부처 및 소속 공무원의 관심 및 의지에 달려 있다. 공무원에게 어떻게 유인을 제공할지가 남아있는 숙제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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