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해킹논란이 시작된 지 한 달이 됐지만 정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국회가 6일 열기로 했던 비공개 전문가 간담회는 야당의 반대로 무산되고, 국정원 현장조사도 성사되기 어려울 듯하다. 앞으로 정치공방이 계속되면 어떤 비밀 첩보활동이 더 노출될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요즘 정치권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국정원의 조직문화와 인적구성이 내국인 해킹과 같은 불법을 용인하기 어렵다. 현재 국정원 주요 간부진은 민주화를 경험한 세대다. 즉,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권력형 세대’가 아니고, 정보기관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고 국민의 바람도 이해하는 ‘민주형 신세대’다. 2005년 도청파문으로 2명의 전직 원장이 구속된 이후, 불법도청을 지시할 간부도 실행할 직원도 없다. 특히, ‘댓글 사태’를 겪으면서 ‘불법 불용’이라는 조직문화가 확고하게 착근됐다. 또 21세기형 정보활동의 특징과 변화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모든 정보가 첨단 컴퓨터와 통신장비 및 모바일 기기로 이뤄지는 시대다. 정보요원 혼자 나서서 정보를 빼내는 007시대는 지났으며, 인적정보 활동인 휴민트(HUMINT)와 기술정보 활동인 테킨트(TECHINT)가 결합되는 ‘융합정보 활동’이 대세다. 사이버 활동의 중요성이 점증하는 정보 패러다임의 변화시대에 진입해 있다.
예컨대, 미국 국가안보국(NSA)을 보라. 소위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는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전 세계 정상의 휴대전화까지 도청한 것이다. 2013년 ‘스노든 폭로’ 사태 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이고 존 베이너 하원의장 등 야당 의원들까지 NSA를 적극 옹호했다. 야당인 공화당은 NSA 도청사건으로 인한 정보활동과 시민자유 사이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애국법’ 유지마저 주장했다. 비록 애국법이 폐지되고 ‘자유법’이 제정됐지만, 미국의 사이버 해킹역량은 약화되지 않았다. 야당은 이런 미국의 NSA 논란에서 배워야 한다.
지금 야당은 국정원이 해킹프로그램을 사용한 로그파일을 모두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이 자료가 공개되면 국정원의 사이버 첩보활동 방법·대상·역량 등 모든 정보체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상자는 자취를 감추고, 우리의 사이버 정보활동은 마비된다. 외교 분쟁이 불거질 수도 있다. 해킹 논란의 본말이 전도돼 국정원의 대북·해외 첩보활동 기능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상투적인 국정원 해체 주장을 하고 있는 북한이 얼마나 좋아할까. 만약 야당이 이런 엄중한 결과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다면 무능한 것이고, 그 파장을 알고서도 제대로 된 의혹 해소 노력을 기피하는 것이라면 오로지 정쟁 추구 이외에 노리는 것이 무엇이라고 항변할 것인가. 야당은 국민의 83%가 ‘로그파일 비공개’를 지지하고 있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언제까지 무시할 것인가. 인터넷 해킹이나 휴대전화 감청으로 일반인이 인권침해를 받아선 절대 안 된다. 그러나 야당이 아무런 물증 없이 사이버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우리 정보기관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이제 정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 우리 국민만 피해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야당은 첨단 디지털 세계에 살면서도, 아날로그 시대에 만들어진 법제도로 정보기관의 최첨단 사이버 활동을 규율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인권침해를 배제할 장치와 함께 정당한 사이버 정보활동을 강화하여 안보와 인권의 동시 보장을 추구하는 선진국형 정보기관으로 성숙시킬 포괄적 입법 능력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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