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때를 일일이 밀어주고 나면 땀이 비 오듯 나지요. 하지만 씻겨놓은 아이들이 뽀얀 얼굴로 친구들과 물장난을 치며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힘들다는 생각도 순간에 사라집니다.”
지난 3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 연지초등학교에서 만난 전종호(37) 교사는 매달 한 번 학생들과 함께 목욕탕에 간다. 학교에서 교육복지담당 교사를 맡은 후 ‘수업 이외에 학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한 학생들과의 ‘목욕탕 동행’이 어느덧 1년 6개월째다.
그는 “학생들과 목욕을 간 첫날에는 전체 아이들의 전신 때를 밀어주느라 진땀을 뺐는데, 이제는 학생들의 등을 밀어준 후 남는 시간에 씻는 법을 가르칠 정도로 여유와 요령이 생겼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난 2003년 교사생활을 시작해 어느덧 13년 차가 된 그는 교사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학생들과 종종 목욕탕에 다녔다. 그는 “교사 초년 시절 학생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좋아 따르는 학생들과 함께 목욕탕에 다니다, 지난해 연지초교에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목욕탕 동행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연지초교에서 전 교사와 함께 목욕탕에 가는 학생 중에는 이혼·재혼·한부모 가정이나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들도 있다. 부모와 함께 목욕탕에 갈 시간이 없는 맞벌이 가정의 학생들도 있다. 부모가 우리나라의 목욕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목욕탕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다문화나 탈북자 가정의 학생들도 있다. 조손 가정의 학생들도 전 교사와 함께 목욕탕에 간다. 전 교사와 목욕탕에 가는 것이 마냥 좋아 목욕탕을 따라오는 개구쟁이 학생들도 있다. 그는 “대부분은 저마다 아버지와 목욕탕에 갈 수 없는 사연이 있다”며 “목욕탕에 가는 날은 아버지 대신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돌본다”고 말했다.
전 교사가 목욕탕에 데리고 가는 학생들은 한 번에 5∼7명 정도다. 목욕탕에 가는 날이면 전 교사는 학교에서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 거리의 목욕탕까지 학생들을 인솔해 데려간다. 목욕탕에 들어가서 학생들을 탈의시킨 뒤 비누칠을 해서 온탕으로 들여 보낸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학생들을 차례로 불러 등을 밀어주고 씻는 법을 가르쳐 준다. 전 교사는 “등을 밀어주는 나에게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 목욕탕에 왔다’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온 기분이다’라고 말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고 고백했다. 학생 중에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전 교사의 등을 밀어주며 전 교사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학생들도 있다.
학생들과 목욕이 끝나면 같이 우유도 마시고 짜장면을 먹기도 한다. 학생들을 집 앞까지 일일이 데려다 주고 나면 5∼6시간에 걸친 목욕탕 동행이 마무리된다. 그는 “아이들이 집에 가는 길에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집 앞까지 바래다 준다”며 “아이들과 목욕탕에 다녀온 날에는 몸이 지쳐서인지, 기분이 좋아서인지 밤에 잠도 더 잘 온다”고 자랑했다.
전 교사는 목욕탕에 다녀온 후 학교생활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는 학생들을 볼 때면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는 “위생 상태가 불량한 학생들은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며 “집안 환경이 어려워 잘 씻을 수 없었던 아이들이 놀림을 받다가 목욕탕에 다녀와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전 교사는 학생들과 목욕탕에 다니면서 ‘씻고 싶지만 씻는 법을 모르는 학생’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학생들에게 목욕탕에서 머리 감는 법, 목 닦는 법, 발 씻는 법 등도 직접 가르친다.
학생들과 목욕탕에 가서 장난기 많은 학생 때문에 진땀을 뺄 때도 있다. 그는 “아이들끼리 목욕탕에서 장난을 치다 동네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면 난감하다”며 “‘아빠가 누구냐’는 어른들의 물음에 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아이들 때문에 난감할 때도 있다”고 크게 웃었다. 그럴 때면 전 교사는 마치 ‘진짜’ 학생들의 아버지가 된 것처럼 어른들을 향해 연신 허리를 숙여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전 교사는 학생들과 목욕탕 동행을 시작하기 전에 걱정이 더 많았다. 그는 “‘목욕탕을 따라나선 학생들이 놀림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 가장 앞섰다”며 “자식 같은 학생들이지만 막상 목욕탕에서 알몸을 보여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학생들과 목욕탕 동행을 시작한 이후 전 교사가 우려할 만한 일은 없었다. 이제는 학생들이 목욕탕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가 됐다. 그는 “목욕탕에 가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차마 하지 못한 가정사나 마음속 말을 많이 한다”고 뿌듯한 마음을 드러냈다.
학생들과 목욕탕에 다니면서 바라는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 교사는 “아이들 모두가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을 갈 수 있을 정도로 가정환경이 안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내와 세 자녀를 두고 있는 전 교사는 “정작 아들과는 목욕탕에 자주 가지 못한다”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느라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소홀할 때가 많다”고 가족을 향한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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