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약 먹었어?”

백진철이 묻자 곽태일이 머리만 저었다. 그러나 눈동자는 흐렸고 어깨가 늘어져 있다. 둘은 룸살롱 공사 현장 구석에 마주 보고 서 있다. 오후 5시쯤, 공사는 인테리어 작업이 내일 끝날 테니 사흘 후에 개업할 예정이다. 주위를 둘러본 백진철이 바짝 다가섰다. 방금 마약을 먹었느냐고 물은 것이다.

“그런데 왜 이래? 이 자식, 바른대로 말 안 해?”

“나 200달러만 빌려 줘. 아니, 150달러.”

곽태일이 갑자기 백진철의 소매를 움켜쥐었다. 그러더니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100달러도 좋아. 제발, 형님…….”

“이 새끼, 약 중독이구먼.”

소매를 뿌리친 백진철이 곽태일의 목을 움켜쥐었다. 눈을 부릅뜨고 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자 곽태일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이 개새끼, 차라리 죽어라.”

곽태일은 백진철이 한시티에서 만난 유일한 9군단 국경경비대 출신이다. 나이도 두 살 어리고 계급도 아래여서 동생처럼 대했고 이곳 공사장에도 데려와 일을 시킨 것이다. 이윽고 백진철이 손을 풀자 곽태일이 컨테이너 벽에 등을 붙이고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곽태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백진철이 쪼그리고 앉아 곽태일의 어깨를 두 손으로 밀었다.

“너, 언제부터 약 먹었어?”

“한 달 전쯤…….”

“그럼 돈을 모은다는 것, 거짓말이지?”

“못 끊었어.”

“누구한테 샀어?”

“숙소에서…….”

“숙소 누구?”

“고려산업 직원들.”

“조형채, 정기필 부하들 말이냐?”

백진철이 곽태일의 어깨를 거칠게 밀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곽태일이 머리를 컨테이너에 부딪쳤지만 멍한 표정으로 백진철을 올려다보았다. 조형채와 정기필은 북한 밀입국자 사이에서 터줏대감으로 알려진 사내들이다. 그중 조형채가 사장으로 불리면서 휘하에 수십 명을 거느리고 인력공급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인력공급 업체가 수십 개 난립하고 있지만 조형채의 고려산업이 가장 인원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잠시 후에 끝쪽 컨테이너 방 안에서 백진철은 김광도와 마주 보고 서 있다. 백진철의 말을 들은 김광도가 입맛을 다셨다.

“야단났다. 임금 받아서 마약으로 써버리면 어떻게 산단 말이냐?”

말은 그랬지만 김광도는 시큰둥한 표정이다. 상황이 피부에 아직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백진철이 김광도를 보았다.

“형님, 곽태일이 이번 룸살롱에 취업하면 약 판매를 맡기겠다고 했답니다.”

김광도가 긴장했고 백진철의 말이 이어졌다.

“곽태일을 일 못하게 하면 그놈들이 가게를 가만 놔두겠습니까? 다른 놈을 시키겠지요.”

“…….”

“조형채는 마약을 북한에서 공급받는다고 합니다. 안에 들어가 군인 호위를 받으면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

“이미 숙소의 북한 노동자 2할이 중독자가 되었고 곧 러시아, 중국에서도 마약이 들어와 시장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거 야단났군.”

이맛살을 찌푸린 김광도가 긴 숨을 뱉었다.

“하나를 피하면 더 큰 파도가 덮쳐 오는 꼴이구나.”

백진철의 시선을 받은 김광도가 어깨를 추켜올렸다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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