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파주출판도시를 다녀왔다. 갖가지 모습과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출판사 건물과 문화예술센터를 보고 놀랐다. ‘건축의 시인’이라 불리는 알바루 시자가 자연 채광을 그대로 살려 설계한 미메시스 갤러리에서 차를 마시면서 책과 건물이 절묘하게 조화된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더더욱 놀란 것은 한국 출판문화 발전을 위해 설립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였다. 1층에 위치한 ‘지혜의숲’에 들어갔는데, 출판과 건축이 이렇게 멋있고 아름답게 만날 수 있음에 크게 감격했다. 그곳 게스트 하우스에는 우리나라 대표 작가 17명의 이름이 붙은 방들이 있었다. 박경리, 박완서, 최인훈, 김훈 등…. ‘박완서의 방’으로 들어갔다. 벽에는 전집이 진열돼 있고, 작은 유리장 안에는 육필 원고가 보존돼 있었다. 멀리 창문 밖으로는 북한의 송악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출판도시 한복판에 서서 문화 국가의 국민임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그러한 자긍심은 곧 무너지고 말았다. 몇 군데 출판사를 방문했다. 주차장 마당에는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까닭을 물었더니 팔리지 않는 책들로, 바로 폐지 공장으로 보낼 것이라고 했다. 적지 않은 시간과 돈, 그리고 전문가를 투입해 만든 책들이 저렇게 내던져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궁금했다. 출판시장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가장 최근에 실시한 ‘2013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9.2권, 학생은 32.3권이었다. 성인은 한 달에 책 한 권도 읽지 않으며 학생 역시 3권도 채 안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평일 독서 시간도 성인은 23.5분, 학생은 44.6분으로 성인은 하루에 30분도 책을 읽지 않으며 학생 역시 하루에 1시간도 책을 읽질 않는다. 어느 대형 서점에서 내건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책 읽기는 나라 지도자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외국에서는 대통령이 학교를 방문해 책을 읽어준다. 대표적으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들 수 있다. 몇 년 전에 오바마 대통령은 텍사스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그러한 모습이 텔레비전에 방영돼 ‘책 읽는 대통령’ 이미지로 국민과의 친밀도를 높였다. 또한, 여름휴가철만 되면 백악관은 대통령이 무슨 책을 읽을 것인지를 발표한다. 그 책들은 그대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다. 예전에 우리나라 대통령도 여름휴가 때 무슨 책을 읽을 것인지 청와대를 통해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에 국제도서전 개막식에 참석해 ‘유럽의 교육’을 비롯한 5권의 인문 서적을 샀다. 그 후에 이 책들은 인기가 높아져 재판을 찍을 정도였다. 이렇듯 대통령의 책 읽기는 출판계에 곧바로 영향을 준다. 박근혜정부는 국정 4대 지표 중에 하나로 문화 융성을 내세웠다. 그런데 대통령의 문화 융성은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문화가 있는 날) 공연이나 영화 관람에 치우치고 있는 듯하다. 문화 융성이 문화계 전반에 골고루 퍼져 나가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달 마지막 수요일에 대통령이 파주출판도시에 있는 지혜의숲을 방문하면 어떨까? 어깨가 축 처진 출판인들을 격려해주고 대화도 하며 출판을 통한 문화 융성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 좋을 듯하다. 지혜의숲은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이를 뚫고 나갈 지혜를 줄 수 있다. 문득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뒤뜰의 작은 벽오동 묘목이 생각난다. 그 나무는 여든 살이 훨씬 넘은 한 출판인이 심었다. 무슨 염원으로 그 벽오동을 심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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