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다녀온 괌 비행은 비행기를 가득 채운 가족 단위 승객들과 신혼여행객들로 인해 엔진 시동 없이도 날아오를 것처럼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푸른빛 바다와 너른 백사장, 맛있는 먹거리와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기는 쇼핑. 휴양에 관한 모든 것을 갖췄다는 파라다이스에는 인천을 출발해 단 4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다. 그 누가 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같은 시각, 여행에 대한 기대가 가득한 객실 분위기와는 달리 커튼 뒤 승무원들이 모여 서비스를 준비하는 공간은 다소 긴장된 분위기였다. 인천~괌 노선은 비행시간에 맞춰 기내식 서비스와 기내 판매, 입국 안내까지 마치기 위해서는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노선이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 다른 팀에서 지원 온 신입 승무원이 긴장된 얼굴로 일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비행기 이륙 후 한참이 지나도 긴장이 풀리지 않는 후배의 모습에 신경이 쓰였는지 고참 선배가 후배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언했다. “객실 승무라는 일이 장거리 달리기하고 닮았어요. 분주하고 긴장되는 비행일수록 맡은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에서 울리는 박자에 귀 기울이고 자기만의 ‘업무 페이스’를 지켜 가는 것이 중요해요.”

순간 선배의 조언처럼 우리 객실 승무 업무가 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마라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마라톤대회나 올림픽대회에서 기대주였던 선수가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눈물을 떨구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다. 원인은 대부분 대회 성적에 대한 과욕이나 라이벌의 도발 또는 예측하지 못한 날씨로 인한 페이스 조절 실패였다. 예측하지 못한 승객들의 요청사항이나 기내외 비상상황에 얼마나 의연하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에 따라 서비스의 성패가 갈린다는 점에서 객실 업무의 성공 노하우 역시 마라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진짜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베테랑 승무원들의 내공이 빛을 발한다. 고참 선배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회사 매뉴얼이 준비한 서비스를 100% 수행해 낸다. 그 모습은 마치 마라톤에서 가장 고통스럽다는 35㎞ 지점에서도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자기만의 레이스를 이어가는 아프리카의 프로 선수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한 선배들의 안정된 서비스 덕분에 승객들은 변함없는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고, 동료들은 최고의 서비스를 완수할 수 있다.

비행을 마치고 호텔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우연히 신입 승무원과 한자리에 앉게 됐다. 생각보다 밝지 않았던 몇몇 승객들의 표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노련한 선배들에 비해 미숙한 자신의 모습에 속이 상했을까. 아직도 긴장한 얼굴로 멍하니 앉아 있는 후배를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용기를 내어 후배에게 말을 걸었다. “마라톤에서 중요한 건 먼저 들어온 순서가 아니래요. 포기하지 않고 오늘 비행을 무사히 마친 우리 모두 결승선을 통과한 승리자예요. 수고했어요.”

자신을 위로하려 애쓰는 선배의 가상한 노력을 알아차린 걸까, 후배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자신의 박자를 찾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대한항공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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