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 깊은 러프에서 볼을 치던 동반자가 외마다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골프채가 억센 러프에 감기며 그 충격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했다. 하는 수 없이 그를 부축해 클럽하우스로 이동했다. 그날 우리 일행의 라운드는 엉망이 돼버렸다. 11년 전 미국 뉴욕주 웨스터 체스터의 윙드 풋( Winged Foot) 골프 클럽에서 있었던 악몽이었다. 당시 웨스트 코스 1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니 좁은 페어웨이와 아름드리나무가 눈에 들어왔고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코스를 경험하려는 찰나 시작부터 꼬였다. 일행 중 한 사람이 티샷한 볼이 러프로 들어갔고 세컨드 샷을 하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꼼짝도 못했다. 인근을 헤맨 끝에 겨우 찾은 한의원에서 침술을 권했지만 그는 겁이 났던지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일행들은 돌아가며 밤마다 허리 마사지를 해줘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양식을 좋아하지 않는 식성으로 근처 한국 식당에서 음식까지 공수하며 수발도 들어야 했다.
2004년 나인브릿지 회원 몇 명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최고의 클럽은 최고의 회원이 만들어간다는 믿음으로 골프의 본고장 스코틀랜드를 둘러본 지 1년 만에 미국으로 여행을 갔던 것. 하지만 우리 일행의 일정은 순탄치 못했다. 첫 목적지는 미국 동부 오션포레스트 골프장이었다. 클럽에 도착한 후 여장을 풀고, 코스 내 드라이빙 레인지로 향했다가 일행 중 한 회원이 첫 어프로치 샷 연습 때 튀어 오른 흙이 눈에 들어가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퉁퉁 부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독한 감기몸살까지 겹쳤다.
이후 시네콕힐스 골프장에서 열리는 US오픈 관전도 포기해야 했다. 최경주 프로를 만나 응원하기로 약속한 것조차 이행치 못하고 뉴욕 호텔 방에서 TV로 경기를 관전했다. 다음 목적지가 윙드 풋이었는데 또다시 사고가 났던 것. 1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당시의 악몽이 생생하다. 아름다운 추억보다는 그렇게 힘든 골프 여행은 처음이자 유일했던 것 같다.
윙드 풋은 1923년 탄생했다. 뉴욕의 애슬레틱 클럽 회원들은 골프 라운드를 위해 롱아일랜드에 있는 링크스 코스를 자주 찾았다. 하지만 이동거리가 길어 불편을 느낀 회원들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골프장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당시 코스 설계가로 명성을 얻고 있던 틸링 거스트에게 설계를 의뢰해 윙드 풋을 탄생시켰다. 웨스트 코스로 문을 열었고, 이후 이스트 코스를 개장해 지금의 36홀 코스가 됐다. 웨스트 코스는 평소 7264야드, 파72지만 토너먼트가 열리면 7309야드로 늘리고 파70으로 난도를 높인다. 이스트 코스는 6750야드, 파72다.
윙드 풋의 두 코스는 평지에 워터해저드가 없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웨스트 코스는 울창한 숲으로 페어웨이가 더욱 좁게 느껴져 나뭇가지를 간헐적으로 잘라내기도 한다. 이스트 코스는 웨스트 코스보다 500야드 정도 짧은 대신 미적 요소를 더해 편안한 느낌을 준다. 페어웨이는 좁고, 그린 주변에 많은 벙커가 도사리고 있다. 그린은 지면보다 대부분 높아 볼이 좌우로 흘러내리는 솥뚜껑처럼 생겼다. 이래서 윙드 풋은 얘깃거리가 많다. 1996년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마크 브룩스의 한마디 말 때문에 윙드 풋은 더욱 악명이 높았다. 브룩스는 “윙드 풋에는 어려운 홀 6개와, 매우 어려운 6홀, 그리고 죽음의 6홀이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조차 윙드 풋을 경험한 후 “내가 프로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자책했고, 1974년 US오픈에서 헤일 어윈의 우승 최종 스코어가 7오버파로 역대 최악의 스코어로 메이저 챔피언에 올랐다는 점에서 ‘윙드 풋의 대학살’로 불려지고 있다. 2006년 제프 오길비의 우승 스코어도 5오버파였다.
잭 니클라우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코스를 난이도별로 1점에서 10점까지 평가해 달라는 부탁을 받자 오거스타내셔널과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는 8점을, 페블비치는 10점을 줬다. 그리고 윙드 풋에 대해서는 “11점도 모자라 12점은 줘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는 2020년 다시 열리는 US오픈에서는 어떤 해프닝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사뭇 궁금해진다.
호서대 골프학과 교수 겸 세계100대골프장 선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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