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 低유가쇼크에 국채발행… 러의 ‘오일파워’도 감소할 전망
미국이 그동안 원유수출을 금지해온 법적 근거는 지난 1975년 발효된 에너지 정책 및 보존법(EPCA)이다. 지난 1973년 중동발 오일쇼크가 발발하자, 원유에 대한 미국의 대외의존성을 낮추기 위해선 자국산 원유의 해외수출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셰일가스 붐 덕분에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넘어서는 세계최대 에너지 생산국이 되면서, 이제는 시대에 맞지 않은 원유수출금지법을 개정 또는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난 2013년부터 미 정계 안팎에서 쏟아져 왔다.
지난 2013년 12월 어니스트 모니즈 에너지 장관은 “에너지가 부족한 시대에 만들어진 정책들의 검토가 필요하다”며 원유 수출금지 철회 가능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역시 지난해 9월 브루킹스연구소가 주최한 ‘미국의 에너지 안보와 수출 정책’ 세미나에서 “미국은 시대에 뒤떨어진 원유 수출 금지를 한시라도 빨리 해제해야 한다”며 “미국이 원유수출 금지 조치를 풀면 경제성장과 일자리, 지정학적 측면 모두에서 플러스 효과가 기대되는 만큼 의회가 법을 고치지 않으면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서라도 즉각 원유 수출을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원유수출이 재개되면 과도한 개발로 환경이 파괴된다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하고 있으며, 수출 금지 덕분에 프리미엄을 누려왔던 정유업계 역시 반대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미국은 그동안 원유와 천연가스의 해외수출을 꾸준히 늘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해 7월 최소한만 정제한 초경질원유(콘덴세이트)의 일부 수출을 허용한 데 이어 같은 해 12월 수출량 확대 계획을 발표했고, 같은 해 3월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일일 원유생산량은 951만 배럴로, 2007년 당시 생산량 대비 약 80% 증가했다.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은 아직도 해외로부터 많은 양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지만 정제유 등 석유제품 수입량은 전체 소비량의 약 27%로 1985년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캐나다에 매일 5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하는 등 전체 일일생산량의 약 5.2%를 해외에 판매하고 있다.
국제사회와의 핵합의로 이란산 석유의 시장 컴백이 사실상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데다가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산 원유까지 시장에 쏟아질 경우, 국제유가 급락은 물론 지정학적 판도 역시 요동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5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 하락으로 재정 압박에 시달리면서 연말까지 총 270억 달러(약 31조5414억 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수도인 리야드시가 2007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40억 달러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하기도 했다. 재정지출을 유지하기 위해 사우디정부는 650억 달러 규모의 외화보유액을 가져다 쓰기까지 한 상태다. 미국의 원유수출로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더 하락할 경우, 2000년대 초중반 치솟는 유가 덕분에 오일머니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한편 천연가스를 무기 삼아 동유럽 각국을 쥐락펴락했던 러시아의 영향력 역시 급격히 감소할 수밖에 없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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