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지요. 내일이라도 행정청에 신고하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장현주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럼 오늘 밤이 처녀로서 마지막 밤이 되겠군요.”

“훌륭해.”

로스토프가 술잔을 들면서 칭찬했다.

“‘실크로드’가 환하게 뚫린 것 같군. 당신은 우리한테 축복이야.”

김광도가 따라 웃으면서 한 모금에 보드카를 삼켰고 백진철은 다시 건배를 제의했다.

“제가 장현주 씨를 데려왔으니 중개인인 셈입니다. 중개인한테는 대가를 주는 것 아닙니까?”

한랜드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갖가지 사연을 품고 들어온 군상들을 안은 채 별이 속삭이기 시작했다. 술자리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 장현주를 김광도가 불렀다. 장현주가 다시 컨테이너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백진철이 자리를 피해주었다. 장현주가 눈으로 묻는 시늉을 했더니 김광도가 고무줄로 둥그렇게 묶은 지폐 뭉치를 내밀었다.

“2000달러인데 이 돈으로 옷하고 생필품을 사도록 해요. 선금으로 주는 것이니까 부담 느끼지 말고.”

“그렇다면 받지요.”

돈을 받은 장현주가 입술 끝을 올리고 웃었다. 장현주는 밀입국자 숙소에서 나와 내일부터 실크로드 근처의 새 숙소로 옮기게 된 것이다. 몸을 돌렸던 장현주가 머리만 비틀고 김광도를 보았다.

“내일 몇 시에 만나지요?”

“오후 1시에 내가 숙소로 찾아갈 테니까 짐을 싸놓고 기다려요.”

김광도가 말을 이었다.

“차에 짐을 싣고 행정청에 가서 신고한 다음에 새 숙소로 갑시다.”

장현주가 방을 나갔을 때 엇갈려서 백진철이 들어왔다.

“넌 방에 있지 왜 자리를 피하는 거냐?”

김광도가 묻자 백진철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형님이 같이 자자고 하실 것 같아서요.”

“미친 놈.”

“말씀 안 하셨어요?”

“시끄럽다. 이 자식아.”

“남자 숙소에서 노리는 놈들이 많았지요. 저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가 이번에 가게 일로 처음 말을 걸었습니다.”

보드카에 얼굴이 붉어진 백진철이 앞자리에 앉았다. 밤 10시가 되어가고 있다. 장현주는 버스를 타러 떠났는지 밖에서 기척이 끊겼다. 로스토프는 옆쪽 컨테이너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아마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났다면 조형채 일당이나 다른 조직에서 손을 뻗쳤을 것입니다. 장현주 씨가 여자들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어서 함부로 손을 못 댔지만 말입니다.”

“그랬군. 생존력이 강한 여자구나.”

“재빠르지요. 혼자 있었다면 벌써 놈들이 채갔을 것입니다.”

“…….”

“가게에 나와도 모임 회장은 그대로 유지할 것 같습니다.”

“그건 상관없어.”

“당원이어서 조직력이 강합니다.”

“당원이라니?”

“장현주 씨는 공산당원이었지요.”

“…….”

“여기선 북한과는 다른 공산당이지요. 제각기 조직을 만들고 끼어 있는 것이 사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너도 그러냐?”

“예, 저도 탈영자들 모임의 회장입니다.”

백진철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언제 써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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