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50년은 갈등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협력의 역사였다. 냉각과 해빙을 반복하는 복잡한 경로를 거치면서, 한·일 간 시너지 효과도 있었다. 수교 당시 약 30배였던 양국 경제력 차는 약 4배로 좁혀졌고, 양국 간 교역량은 430배로 성장했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2015년. 한·일 양국 간 협력의 전기를 마련하기에 좋은 시기다. 한·일 간 한랭전선이 펼쳐진 데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수정주의적 역사 인식이 냉매 작용을 하고 있다. 한·일 관계가 통 큰 화해의 길로 뻗어 가기 위해서는 패권의 길을 걷다 자멸한 일본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사죄가 먼저 나와야 한다.
한 일본인 전문가가 말했듯이 한·일 관계는 외상이 내상까지 유발하는 복합 골절이어서 치유하기가 쉽지 않다. 이 와중에 문화 방면과 젊은 세대의 교류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어, 한·일 간 관계 악화를 풀어주는 역전의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풀 꺾인 일본 내 한류 분위기와 관련해서도 희망적 소식이 들려온다. 한류스타 김수현이 오는 10월 드라마 ‘프로듀사’ 일본 방영을 앞두고 7일과 9일 이틀간 도쿄와 오사카에서 연 이벤트 티켓은 오픈 직후 5000석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그룹 씨엔블루가 5일 일본에서 발매한 공연실황 DVD도 오리콘 일간 차트 1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도 일본산 맥주와 사케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고, 일본 만화 ‘원피스 78’과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 들어 한·일 현대미술전과 한·일 문화재 공동 전시 등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선린으로서의 민간의 힘도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일본 형무소에서 숨진 윤동주 시인의 맑고 기품있는 시를 흠모하는 일본인이 늘어났다. 한 일본 시민이 올해 70주기(2월 16일)를 맞은 윤동주 시인 추도식에 참석해 “한·일 양국 시민 간 진정한 평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연대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2001년 도쿄 지하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남성을 구하고 숨진 의인(義人) 이수현을 기리는 장학회에도 일본인들로부터의 기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윤동주와 이수현의 의로운 정신을 본받는 한·일 청년들 간 대화 모임이 늘어나야 한다. 아베 총리 등 보수 정치인들 때문에 모처럼 맞은 한·일 관계 개선의 계기가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일본 시민과의 문화적·미래지향적 네트워크를 광범위하게 짜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의 광복 100주년, 일본의 패전 100주년이 되는 때까지 앞으로의 30년을 짊어질 청년들이 아시아 공동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한·일 관계의 경색을 푸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들이 한·일이 공동으로 안고 있는 고령화 문제, 중국의 대기오염과 공해의 국경 이동, 청년 실업, 아시아 개발협력, 대형 재난에 대한 해법에 대해 토론하고, 나아가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시대를 활짝 열어갈 수 있다. 한·일 관계는 아직 온도가 다른 두 개의 나선을 오르는 듯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다양한 채널을 통한 관계 개선 노력이 이어진다면 정치·외교·사회 분야에 얽힌 복잡한 코드를 푸는 실마리를 만들 수 있다.
jinye@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