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화 / 중소기업청 청장

최근 수년간 스타트업의 열기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한국의 중소기업 정책과 창업(創業) 생태계가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을 벤치마킹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중남미에서는 멕시코, 중동에서는 쿠웨이트다.

중남미 국가에 대한 관심은 지난 4월 대통령의 중남미 4개국 순방을 계기로 고조됐다. 경제 협력 파트너로 중남미 국가가 새롭게 부상됐으며, 이번 순방에서 공산품, 원자재 교역 중심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전자상거래, 보건의료, 방송 콘텐츠 등으로 협력 분야를 다변화한 성과가 있었다. 중소기업청은 이번 순방에서 청년 창업가의 중남미 진출 가능성을 모색했다. 그래서 ‘칠리콘 밸리’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창업 붐을 일으키고 있는 칠레와 청년 창업자 교류를 내용으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내년부터 상호 창업자를 교환하는 협력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칠레 정부는 창업 붐을 조성하기 위해 ‘스타트업 칠레’ 프로그램을 2010년부터 시행해 고급 기술을 가진 외국인들을 국내로 유인하고 있다. 창업자금 3만5000만 달러 지원, 사무실 공간 및 숙박시설 제공, 1년간 비자 발급 등 파격적인 지원을 하면서 요구한 것은 자국 내에서 매출이나 고용을 창출해 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자국 청년들에게 창업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 달라는 것이다.칠레 정부에 따르면, 첫해에 칠레 청년의 프로그램 참여가 5%(20명 중 1명)에서 시행 5년차에 20% 이상(1100명 중 275명)으로 높아졌다.

그러면 현재 칠레에서 한국인의 창업 현황은 어떨까. 한인 창업의 성공 사례를 보면, 아웃도어 제품을 취급하는 ‘도이떼(Doite)’의 정재원 대표가 있다. 그는 25세에 유학길에 올라 학비를 벌기 위해 오퍼상에서 일하면서 텐트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게 됐고, 현재는 남미뿐만 아니라 노르웨이와 중국, 뉴질랜드까지 진출해 연 3600만 달러(약 390억 원) 규모의 매출을 올린다. 도이떼의 경우처럼 칠레에서는 의류 도매 및 유통, 프랜차이즈, 수입업 등 소상공·유통업 분야에 한국인의 창업이 치중돼 있고, 아직 고급 기술 기반의 창업 진출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난다.

중기청은 내년부터 칠레와 창업자 교류를 시작으로 한국인의 주요 창업 분야를 기술 창업으로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하려 한다. 이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중남미 진출 창업 기업의 사무 공간과 현지 시장 정보 제공, 법률·회계 컨설팅 등을 제공하는 수출 인큐베이터 설치를 현재 브라질에서 칠레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브라질을 제외하고 그 넓은 대륙의 3억5000만 인구가 스페인어만을 사용한다는 것은 중남미 대륙으로 진출을 꿈꾸는 청년들에게는 고무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중기청의 칠레 정부와의 창업자 교류 협력을 발판삼아 중남미 시장을 향한 청년 창업자들의 도전이 활성화되기 바란다.

지난해 9월 중국 난징(南京)에서 개최된 아태경제협력체(APEC) 중소기업 회의에서 칠레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대화 중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한국에서 칠레 와인 소비가 급증했다고 했더니, 그가 칠레 와인의 우수성을 자랑하면서 ‘테루아르’(속칭 ‘떼루와’)의 독특성을 언급했다. 테루아르란 와인용 포도가 자라기 좋은 토양의 성질, 기후, 지형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칠레의 스타트업 열풍을 보면서 국가마다 스타트업이 활성화되기에 좋은 생태계, 즉 테루아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한국에 세계적 수준의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는 테루아르를 조성하고 이를 해외 네트워크와 연결하면 글로벌 창업의 성공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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