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취재를 할 때마다 종종 생각합니다. “나는 재미있었는데 과연 관객들은 어땠을까?” 혹은 그 반대로.
‘취향을 탄다’거나 ‘개취(개인의 취향)의 문제’라는 말을 종종 쓰지요. 딱 뮤지컬에 해당하는 말 같습니다. 물론, 객관적인 명작이 있습니다. 또 수작이라거나 시도는 좋은데 아쉬웠다거나 혹은 ‘망작(망친 작품)’ 등의 총평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각양각색 관객과 그보다 더 세분화되는 취향 앞에서 이런 구분이 무용지물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 좀 더 단순한 논리(?)를 세운 후 기사를 씁니다. 이 뮤지컬이 반드시 보아야(혹은 보지 말아야) 할 작품인지.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그리고 광복절을 사흘 앞둔 오늘. ‘반드시 보아야 할’ 작품을 추천하기 위해 서론이 길었습니다. 하나는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 100주기(1995년)를 기해 제작된 ‘명성황후’(예술의전당·9월 10일까지)이고, 다른 하나는 조정래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아리랑’(LG아트센터·9월 5일까지)입니다. 전자는 이미 20주년을 맞이했고, 후자는 올해 첫선을 보였습니다. 순수 국내 제작진이 만든 창작 뮤지컬이고, 가슴 아픈 과거사를 소재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앞서 밝힌 ‘개취’ 에 따라 선호도는 약간 갈릴 것 같습니다. ‘명성황후’는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 고종 등 대한제국 위정자(爲政者)의 이야기이고, ‘아리랑’은 소설 속 송수익, 양치성, 감골댁 등 일제강점기 민중들의 삶을 그립니다. 여기서 비롯된 ‘시선의 차이’는 대표 넘버(삽입곡)만 들어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은 열성의 노고로 세워진 아름다운 나라/ 날은 새기 전이 가장 어둡고/ 촛불은 마지막에 다시 타는 법/ 지금이 날 새기 전의 어둠/ 조선의 날도 이윽고는 밝으리/ 조선의 앞날을 위하여 잔을 드소서.”(조선의 아침이 밝아오네, 명성황후)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남의 땅/ 모래바람 부는 척박한 땅/ 험한 물 건너 찾아 떠나네/ 나라를 잃고 고향도 잃고/ 정처 없이 떠나가네/ 언젠가 다시 돌아와야 혀.”(어떻게든, 아리랑)
하지만 두 작품 모두 권합니다. 강한 바람이 담긴 명성황후의 노래나 나라 잃은 백성의 서러운 노래나 가슴을 똑같이 울립니다.
또, 두 작품 속 시간이 이어져 있다는 것도 이유가 됩니다. 1800년대 후반(명성황후)부터 1920년대 말(아리랑)까지, 굴곡진 한국사의 풍랑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두 공연을 통해 뮤지컬 ‘취향’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명성황후’의 무대는 형형색색 궁중 의상이 수를 놓는 반면, ‘아리랑’은 단출하지만 상징성이 가득한 무대를 선보입니다.
pdm@munhwa.com
‘취향을 탄다’거나 ‘개취(개인의 취향)의 문제’라는 말을 종종 쓰지요. 딱 뮤지컬에 해당하는 말 같습니다. 물론, 객관적인 명작이 있습니다. 또 수작이라거나 시도는 좋은데 아쉬웠다거나 혹은 ‘망작(망친 작품)’ 등의 총평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각양각색 관객과 그보다 더 세분화되는 취향 앞에서 이런 구분이 무용지물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 좀 더 단순한 논리(?)를 세운 후 기사를 씁니다. 이 뮤지컬이 반드시 보아야(혹은 보지 말아야) 할 작품인지.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그리고 광복절을 사흘 앞둔 오늘. ‘반드시 보아야 할’ 작품을 추천하기 위해 서론이 길었습니다. 하나는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 100주기(1995년)를 기해 제작된 ‘명성황후’(예술의전당·9월 10일까지)이고, 다른 하나는 조정래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아리랑’(LG아트센터·9월 5일까지)입니다. 전자는 이미 20주년을 맞이했고, 후자는 올해 첫선을 보였습니다. 순수 국내 제작진이 만든 창작 뮤지컬이고, 가슴 아픈 과거사를 소재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앞서 밝힌 ‘개취’ 에 따라 선호도는 약간 갈릴 것 같습니다. ‘명성황후’는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 고종 등 대한제국 위정자(爲政者)의 이야기이고, ‘아리랑’은 소설 속 송수익, 양치성, 감골댁 등 일제강점기 민중들의 삶을 그립니다. 여기서 비롯된 ‘시선의 차이’는 대표 넘버(삽입곡)만 들어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은 열성의 노고로 세워진 아름다운 나라/ 날은 새기 전이 가장 어둡고/ 촛불은 마지막에 다시 타는 법/ 지금이 날 새기 전의 어둠/ 조선의 날도 이윽고는 밝으리/ 조선의 앞날을 위하여 잔을 드소서.”(조선의 아침이 밝아오네, 명성황후)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남의 땅/ 모래바람 부는 척박한 땅/ 험한 물 건너 찾아 떠나네/ 나라를 잃고 고향도 잃고/ 정처 없이 떠나가네/ 언젠가 다시 돌아와야 혀.”(어떻게든, 아리랑)
하지만 두 작품 모두 권합니다. 강한 바람이 담긴 명성황후의 노래나 나라 잃은 백성의 서러운 노래나 가슴을 똑같이 울립니다.
또, 두 작품 속 시간이 이어져 있다는 것도 이유가 됩니다. 1800년대 후반(명성황후)부터 1920년대 말(아리랑)까지, 굴곡진 한국사의 풍랑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두 공연을 통해 뮤지컬 ‘취향’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명성황후’의 무대는 형형색색 궁중 의상이 수를 놓는 반면, ‘아리랑’은 단출하지만 상징성이 가득한 무대를 선보입니다.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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