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자주 만나도 불통인 사람이 있고 가끔 만나도 통하는 사람이 있다. 국적이나 언어, 세대를 초월해 생각이 통하는 사람을 만날 때 느끼는 기쁨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데 지난 7월 23일 타계한 돈 오버도퍼 전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관계연구소장이 바로 그런 분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던 2003년 무렵이다. 브루킹스연구소 등에서 한반도 관련 세미나가 열릴 때마다 그는 어김없이 참석해 귀를 기울였다. 오버도퍼는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가 대북 협상 개시 문제를 놓고 내부 논쟁을 벌일 때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와 함께 워싱턴포스트에 ‘북한을 붙잡아야 할 때’(2005년 6월 22일자)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그 후 일주일여 만에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북측과 접촉에 나서며 6자회담이 성사됐고, 2개월 후 첫 성과인 9·19 공동성명이 나오게 됐다.
그는 2006년 존스홉킨스대에 한미관계연구소가 설립될 때 초대소장을 맡았지만 보수는 받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기자가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기사를 쓰기 위해선 어떠한 정부의 지원금도 받아선 안 된다는 게 내 원칙”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전쟁에서 소련 붕괴까지 40년 가까이 현장을 지켰던 그는 취재철학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해줬다. 프린스턴대 출신인 그가 국무부를 출입할 때 동문인 조지 슐츠와 제임스 베이커가 연달아 국무장관이 되자 주변 동료들은 모두 그의 학연을 부러워했지만, 그는 더 거리를 뒀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취재원과 친구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선배인 슐츠와는 리처드 닉슨 행정부 때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거리를 뒀다. 동창인 베이커와는 좀 더 거리를 뒀는데 내가 그의 대변인으로 비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취재원들과 품위있는 관계를 추구하려 했다. 그래야 저널리스트의 독립성이 유지된다.”
2006년 9월 한·미 정상회담 취재차 워싱턴에 갔을 때 시간을 쪼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사무실에 딘앤델루카 샌드위치까지 사다 놓고 “바빠도 식사는 하고 해야지”라고 얘기하던 자상한 분이었다.
말년에 알츠하이머병을 앓은 오버도퍼는 2011년 한반도 전문가 로버트 칼린에게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 보완작업을 부탁했다. 자신의 저서가 북·미 관계 낙관론이 팽배했던 빌 클린턴 행정부 말기까지 기술돼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1953년 육군 중위로 한국에 파병됐던 그는 이 책 서문에 “지금 우리는 군용열차를 타고 남한을 종단하는 긴 여행길에 올랐다”고 기록한 뒤 “전쟁을 겪으면서도 변함없이 건재한 이 놀라운 나라를 평생 관심있게 지켜보게 된 것은 바로 이 순간부터”라고 말했다.
1993년 오버도퍼가 워싱턴포스트에서 퇴직할 때 슐츠 전 국무장관은 “예지력으로 충만한 기사를 제공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쓴 바 있다. 이젠 우리가 84세로 지상의 삶에서 은퇴한 오버도퍼에게 감사의 말을 전할 차례다. “한반도에 대해 보여준 관심과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
muse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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