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 논설위원

‘바위에 부서지더라도/ 폭포는 떨어져야 하고/ 죽음이 기다려도 가야 할 길 있는 법/ 이 나라 지킬 수 있다면 이 몸 재가 된들 어떠리.’ 뮤지컬 ‘명성황후’의 마지막 곡 ‘백성이여 일어나라’ 한 대목이다. 명성황후의 혼(魂)이 신하들과 함께 부르는 형식의 노래로 ‘동녘 붉은 해 동녘 붉은 해 스스로 지켜야 하리/ 조선이여 무궁하라 흥왕(興旺)하여라’ 하고 끝난다. 품위 있는 명성황후 역의 배우 신영숙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부르는 내내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것 같다. 부족한 애국심을 더 끓어오르게 하는 노래다.”

또 다른 아리아 ‘어두운 밤을 비춰주오’는 명성황후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도 절절하게 표현한다. 천둥과 번개가 치는 밤을 무서워하는 왕세자를 방으로 돌려보내며, 나라가 기울고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줄 알면서도 아들 걱정이 앞서는 어머니의 가슴 무너지는 심정을 나타내는 노래다. 명성황후 역에 더블 캐스팅된 김소현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 뮤지컬계의 대부’ 윤호진(67)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장은 명성황후 시해(弑害) 100년을 맞아 그의 삶을 뮤지컬화하려고 소설가 이문열에게 희곡을 의뢰했었다. 1885년 일본 공사 미우라가 지휘했던 시해 작전 ‘여우 사냥’을 제목으로 쓴 희곡을 김광림 각색, 양인자·김희갑 작사·작곡의 뮤지컬로 제작한 것이다. 일제(日帝) 당시 민비(閔妃)로 격하해 부르며 ‘사치와 권력욕에 눈먼 왕비’ 등으로 매도한 명성황후의 위상을 ‘대한제국의 잔다르크’ 등으로 재정립하기 위한 취지였다. 그렇게 탄생한 ‘명성황후’는 ‘한국 창작 뮤지컬의 자존심’ ‘뮤지컬의 세계 심장인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에 진출한 아시아 최초의 작품’ 등으로 일컬어진다.

한국 창작 뮤지컬 최초로 대극장 무대에 1000회 이상 오른 ‘명성황후’의 초연 20주년 기념 공연이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지난 7월 28일 개막해 오는 9월 10일까지 열린다. 대본·음악·무대미술·영상 등 모든 것의 획기적 재창조를 이끈 윤 교수는 최근 “이번 공연은 그동안 걸어왔던 길의 한 지점일 뿐이다. 계속 진화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진화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진화가 더 이어져 세계 전역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불후의 명작’으로 더 크게 떠받들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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