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에 ‘사죄’란 표현을 사용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이 담화의 자문을 맡은 기구가 한국 정부가 역사 인식의 골대를 옮겼다느니 한국 국민이나 대통령이 감정적으로만 일본을 본다는 등 우리의 심기를 지극히 자극한다.
사실 일본만큼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나라는 드물다. 원자폭탄을 한 발도 아니고 두 발씩이나 떨어뜨린 나라와 맹방 관계를 유지하며 그 나라가 써준 헌법을 지금껏 써왔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미국 국민도 테러와의 전쟁에 프랑스가 동참하지 않자 나치에 짓밟혀 망하게 된 나라를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살려준 은혜를 모른다며 ‘프렌치 프라이스’(French Fries)를 ‘프리덤 프라이스’(Freedom Fries)로 고쳐 부르며 격앙된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사실 이성적으로 따져보자면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로부터 받은 도움이 먼저이고, 그때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졌다. 파리에서 출발한 유로스타가 도버 해협을 건너 런던에 도착하는 곳이 하필이면 나폴레옹이 영국에 패전한 장소로 이름을 붙인 워털루역이다. 대한해협을 기찻길로 연결했을 때 신칸센이 도착할 역 이름을 ‘명량’으로 지은 셈이니 이 또한 그리 이성적이진 않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어떤 민족이 입은 상처는 3대, 100년으로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도 역사 인식이 결코 이성적으로만 구성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과거 일본은 정말 대단했다. 겉모습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비아냥까지 들어가며 원자폭탄을 자동차 수출의 융단 폭격으로 되갚아 준 나라. 자국산 TV로 전 세계 가가호호를 점령한 나라. 제2차 세계대전 때 활약하던 전함들의 이름을 조용히 최첨단 이지스함에 승계시키며 국방력을 키워낸 나라. ‘분하면 강해지라’(悔しかったら强くなれ)는 복수의 정석을 보여준 셈이다. 그러면서도 대미(對美) 무역 역조를 개선하기 위해 총리가 직접 백화점에 나가 미국 상품을 사달라고 호소하는가 하면 한국을 방문해서는 한국말로 연설을 하던 나라.
하지만 이제는 다른 나라가 됐다. 지금은 허용되지 않는 가치관이지만 그때는 다들 그랬다며 식민지 정책을 두둔하는 나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 법정에서 4년형을 선고받은 전 나치 친위대원 오스카 그뢰닝은 아우슈비츠에서의 유대인 살해가 일상적인 관행(routine)이었고 자신은 행정 일을 봤을 뿐이었지만, 과거를 반성하고 사죄한 나머지 한 생존자로부터 진정한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한 독일계 미국 기자는 ‘죄의식의 유산’(inherited guilt)이라는 문구로 독일인들의 역사 인식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할아버지들이 나치 편에 서서 전쟁에 참여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그런 죄악을 저지르는 정부에 대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이 독일 학교의 강단에 정기적으로 초청되고 그들의 일기가 학생들에게 읽히는 모습은 과거를 교과서에서 지우려는 모습과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사죄는 눈앞의 득실을 따지거나 과거의 잘못을 끄집어내는 행위가 아니라, 주변국과의 미래 지향적 관계 설정을 위한 준비 과정이자 다시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임을 명심해야 한다. 사죄를 하지 않겠다는 고집은 기회가 오면 또 그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때는 역사 인식을 둘러싼 갈등 수준에서 끝날 문제도 아니고 더는 사죄가 필요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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