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무조건 항복 선언으로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70년이 됐다. 그동안 여러 이유로 해방과 광복, 건국, 독립의 개념을 둘러싸고 적잖은 혼선이 있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제대로 알고 기념해야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통성, 정체성을 반듯이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세계를 향해 독립을 선포했다. 그해 12월 유엔은 대한민국의 합법성을 승인했고, 그에 기초해 미국 등 우방이 대한민국을 승인했다. 1949년 8월 15일 정부는 ‘제1회 독립기념일’을 성대하게 경축했다. 더불어 ‘국경일 제정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회부했다. 4대 국경일은 3·1절, 헌법공포기념일, 독립기념일, 개천절이었다. 그런데 그해 9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 독립기념일이 광복절로 바뀌었다.
광복절의 ‘광복’은 무엇을 영광스럽게 회복한다는 뜻이다. 1910년대부터 해외의 독립운동가들은 ‘광복독립’을 위해 몸을 바쳤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광복’ 두 글자만으로도 독립을 영광스럽게 회복하는 투쟁이라는 뜻이 충분했다. 국회가 독립기념일을 광복절로 바꾼 것은 독립이나 광복이나 그 뜻이 마찬가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1950년을 제2회, 1951년을 제3회 광복절로 경축했다.
그런데 1951년부터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문들은 제3회 광복절을 제6회 광복절로 부르기 시작했다. 1954년부터 정부도 슬그머니 그렇게 바꿔 기념했다. 지난 60년 간 ‘광복’ 두 글자도 암흑을 뚫고 빛이 돌아왔다는 식의 엉뚱한 이미지로 바뀌었다. 이 같은 혼란이 발생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역사의 우연이다. 만약 총선거가 1948년 5월이 아니라 3월에 실시됐더라면 독립은 그해 6월 중에 선포됐을 것이다. 그러면 독립기념일 또는 광복절이 8월 15일과 겹칠 이유가 없었다. 총선거가 5월에 실시됐기 때문에 국회 소집, 헌법 제정, 대통령 선출, 행정부와 사법부 구성이 8월 4일까지 완료됐다. 그래서 독립선포일이 8월 15일로 잡혔는데, 3년 전의 해방도 함께 경축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자 독립은 사라지고 해방만 경축하게 됐다.
둘째는 한국인의 반일 민족주의이다. 1948년 당시만 해도 개인·자유·독립과 같은 근대문명의 기본 가치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는 낮은 수준이었다. 그런 가운데 한국인이 공유한 정신세계는 반일 민족주의였다. 정부도 국민 통합을 위해 민족주의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 교육되지 않고 반일 민족의 일원으로 양성됐다. 그 결과 해마다 광복절을 맞아서는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맞은 기억이 자유인의 국가가 독립을 했다는 기억을 압도해 버렸다.
셋째는 학문하는 자세의 결여다. 해마다 광복절이면 미국 등 우방으로부터 축전이 날아온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제62회 ‘코리안 인디펜던스 데이’(Korean Independence Day)를 축하했다. 지난 60년간 정부는 한국과 3년이 어긋나는 축전을 받고도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어느 쪽이 잘못인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공화국 창건을 기념하지 않는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다. 우선 광복절의 주년(週年)을 바로잡을 일이다. 그런 다음에 혼란의 근원이 된 광복절이란 애매한 명칭을 원안대로 독립기념일로 돌리기 위한 국민적 토론에 착수할 일이다. 올해는 광복 67주년이 되는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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