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양심의 탄생 / 오구마 에이지 지음, 김범수 옮김 / 동아시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소위 ‘안보법’ 재·개정 시도를 비롯해 발표를 앞둔 ‘전후 70년 담화’, 대지진 이후 원전 재가동 등을 둘러싸고 일본 열도에서 진보적 시민사회를 비롯해 지식인 그룹의 시위와 반대성명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아베가 극우로 국가의 방향타를 틀고 있지만, 일본 시민사회와 학계의 진보적 흐름은 역사가 길고 저변이 좁지 않다.

그러나 동구권의 붕괴와 신자유주의 전면화 이후 지구촌이 그렇듯, 일본의 진보적 흐름도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한계에 갇혀 있다.

일본에서 영향력 있는 인문학자인 오구마 에이지(53·게이오대 역사사회학) 교수가 쓴 이 책의 원제목은 ‘살아서 돌아온 남자-어느 일본군의 전쟁과 전후(戰後)’다. 근래 역사학계에서 자주 이용하는 ‘구술사(口述史)’다. ‘일본 양심의 탄생’이란 번역본 제목이 다소 의아할 수도 있다. 읽다 보면 책이 역사와 현실 속에서 ‘양심’의 구체성, ‘양심세력’의 형성에 대한 문제를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민중사요, 사회사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제목을 납득하게 된다.

2012년 일본에서 큰 방향을 불렀고 국내에서도 주목받은 저자의 ‘사회를 바꾸려면’(2014, 동아시아)과 이 책은 ‘추상’과 ‘구상’처럼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개체가 아니라 행위와 관계와 역할의 연결체’이며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행동하라!’라는 전작의 추상적 테마가 삶으로 구체화하면 어떤지, 이 책의 구술자인 한 살아남은 일본군의 삶이 말해준다. 그는 바로 저자의 아버지인 오구마 겐지(90)다.

그는 전쟁 전에 작은 상점에서 일했고, 징병되어 중국 대륙으로 보내졌고, 소련군에 포위돼 투항하며 시베리아 수용소로 끌려가 3년간 강제노동을 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결핵에 걸려 고생했고, 밑바닥 생활을 거쳐 작은 상점을 열었고, 가족을 갖게 됐다.

책은 겐지의 ‘전쟁 체험’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전쟁 전의 삶과 전쟁 후의 삶을 상세하게 따라간다. 그러면서 구술사의 묘미와 힘을 보여준다. 저자가 책의 말미에 말하고 있듯, 겐지는 자신의 역사의 고비마다 느꼈던 감정과 시각을 꾸미지 않고 솔직하게 들려준다.

그 자신이 일목요연한 사상과 관점을 갖지 않았어도, 그가 시대의 고비마다 만났던 상황과 선택, 그 결과를 서술하는 것만으로 역사가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된다.

전쟁을 전후한 겐지의 삶의 태도는 분명하게 달라졌다. 그는 전후에도 평범한 시민이었지만, ‘평화의식’을 전파하는 모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늘 함께하는 ‘행동하는 양심’이 된다. 단 한 번도 군국주의자와 자민당에 투표한 적이 없으며 지금도 지역사회와 시민단체의 회원으로서 활동한다.

특히 겐지는 조선인 출신 일본군이었던 오웅근을 위해 그와 공동으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시베리아 수용소 생활을 같이 한 재중동포 오웅근과 40여 년이 지나 일본인 국적자에게만 ‘위로금’의 형식으로 애매한 보상 사업을 펼친 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다. 책에는 당시 조선인 출신 일본군과 군속들의 이야기들도 구술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엄주엽 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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