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활’ 갔다 그대로 눌러앉아심상정 대표는 소녀 시절 야구선수 김재박과 장효조를 좋아했다. 1978학번으로 서울대에 입학했을 당시만 해도 핑크빛 연애에 대한 로망을 품은 ‘뾰족구두녀(女)’였다. “언제나 바지 대신 스커트를 입었고요, 생머리를 어깨에 닿을 듯 치렁치렁하게 길렀습니다. 구두는 7㎝ 이하는 신지 않았고.” 심 대표는 “여대생은 원래 그렇게 하고 다니는 건 줄 알았다”고 웃어 제쳤다.

그가 학생운동의 길로 들어선 것도 실은 애인 만들기의 부산물이었다. “제가 괜찮다고 찍어서 알아보면 다 운동권이었어요.” 시위대열에 선 그녀의 패션은 하이힐에 흰색 블라우스, 짧은 스커트 차림이었다. 운동권 남심을 잡기 위한 그녀의 시위대 참석은 그대로 공안당국의 사진 채증에 나타났다.

“데모할 때 사진이 찍혔을 것 아닙니까. 한 번은 대학교 학생처장이 불러서 사진들을 내밀면서 정체를 알 수 없다고 하는 거예요. 차림새 때문에. 이건 무슨 뭐 커트 머리에 운동화·청바지 차림이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까. 그 학생처장이 그러더라고요. ‘자네 운동권 애인 뒀나.’ 하하하.”

학생 심상정이 노동운동에 투신한 건 대학 3학년 때인 1980년 겨울방학 당시. 노동야학 차원서 공활(공장활동)을 갖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던 게 노동운동의 시작이었다. 1984년에는 전국 수배령이 떨어졌고 이후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9년이 걸렸다. 6·25전쟁 후 가장 치열했던 연대파업 사건으로 평가받는 구로동맹파업(1985년) 배후로 지명된 것도 그때였다. 공권력의 개입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공간을 찾아 청계피복노조로 들어갔는데 그때 만난 이가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하던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다. 김 전 지사와는 이후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결성을 주도하는 등 인연을 이어갔다. 심 대표의 평생 배필 이승배 씨와의 만남도 김 전 지사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고, 19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면서 진보정치의 대표얼굴로 자리 잡았다. “별명요…저는 ‘철의 여인’보다는 ‘심블리’가 더 좋아요. 러블리 심상정, 심블리 어때요.”

△1959년 경기 파주 출생 △명지여고·서울대 사회교육학과 졸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 △제17·19대 국회의원 △진보신당 공동대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정의당 원내대표 △정의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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