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동 / 경제산업부 차장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일 필립 하먼드 영국 외무장관을 만난 뒤 기재부가 면담 결과로 내놓은 자료가 눈길을 끈다. 4쪽짜리 자료에는 외교나 통상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고, 영국과 한국의 노동개혁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영국 외무장관을 만난 게 아니라 마치 경제장관을 만난 것 같다”는 말이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와 관련,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앞으로 최 부총리가 전 세계 누구와 만나도 노동개혁이라는 용어가 반드시 면담 자료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부총리가 그만큼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는 게 노동개혁이라는 뜻이다. 최 부총리는 지난 12일 경제관계장관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올해 안에 노동개혁 작업을 마무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올해라고 해봐야 이제 4개월 남짓 남았다. 시간이 없다.

사실 박근혜정부의 노동개혁은 얼마 전 실패로 돌아간 적이 있다. 고용노동부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주도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때도 기재부는 노동개혁에 관여하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담당 부처인 노동부와 노사정위에 노동개혁의 주무(主務)를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사실 노동개혁과 공공개혁, 교육개혁, 금융개혁, 저출산·고령화 등은 모두 한 고리에 얽혀 있는 문제다. 따로 해법을 찾을 수도 없고, 찾아서도 안 된다. 한국 경제에 대한 종합적인 시야를 갖고, 각 부문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이들 문제의 뿌리가 경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우리나라 경제 정책을 총괄할 뿐만 아니라 재정과 세제 등을 통해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기재부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요즘 대통령이나 경제부총리는 입만 떼면 노동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고장 난 녹음기처럼 반복하고 있지만, 말만 한다고 일이 성사되는 게 아니다.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집단에 일을 맡기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일이 성사되는 것이다. 기재부가 노동개혁에 ‘총대’ 메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욕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재부가 노동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을 위해 전면에 나서기 위해서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강력한 지원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하고 나서는데,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조차 없다면 노동개혁은 애당초 물 건너간 것이다.

노동개혁에 기재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런 논리라면 기재부가 온 세상일을 다 간섭해야 할 것”이라는 비판이 당연히 나올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청년 고용절벽’과 저출산·고령화, 경제의 기초 체력인 잠재성장률 하락 등을 고려할 때 일개 부처의 힘만으로는 구조개혁을 수행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재부가 나서서 정부 내의 논의를 총괄 조정하고, 국회와 이익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구조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 노동개혁마저 공무원연금 개혁처럼 어설프게 했다가는 박근혜정부 후반부의 국정 운영은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다.

haedong@munhwa.com
조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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