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경기순환(political business cycle)이라는 이론이 있다. 경제 상황이 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집권당이 선거에 앞서 재정(財政)정책을 이용해 경기를 부양, 여당에 유리한 상황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으며, 선거 후에는 확장정책으로 인한 물가상승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긴축정책을 펴서 경기 순환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경기변동은 경제체제에 부정적인 외부적 충격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건전하고 생산적인 경제활동을 저해하며 경제 전반의 건전성을 훼손한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 본예산보다 15조 원(4%) 이상 늘어난 390조 원대로 편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지난 16일 열린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에서 새누리당이 제안한 400조 원과 별 차이가 없는 규모다. 이는 정치적 경기순환, 이를 지탱하는 포퓰리즘, 그리고 이로 인한 부정적인 경제적 부작용을 떠올리게 한다. 여당과 야당이 평소에는 다른 정책 목표를 제시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의기투합해 선심성 예산 확대와 경기부양을 한목소리로 내는 모습에 씁쓸한 느낌도 들고, 예산안이 통과돼 우리나라의 성장잠재력은 또다시 줄어들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이번 정부의 확장적 예산안은 거시경제적 부작용 외에도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재정 건전성의 악화가 불을 보듯 하다. 세입 증가 가능성은 작은 상황에서 지출의 급격한 확대는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의 증가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세대가 자신들의 지출을 위해 미래 세대에 빚을 남겨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확대되는 지출이 내용적으로도 생산적인 투자에 비해 의존성을 키우는 이전지출과 낭비적인 소비지출의 성격이 강하다. 이는 현재 세대가 자신들의 편익을 위해 소비하고, 미래세대를 위해서는 준비하지 않는 책임 방기다. 이는 경제 전체의 잠재성장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며 우리나라의 현재 경제 상황과 경제 개혁 등의 시급성에 비춰 너무나 한가한 현실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지출 프로그램의 편익 범위가 국지적이어서 집단의 관점에서는 이익이나 국가 전체 관점에서는 중요성이 떨어지는 사업이 많아 보인다. 이는 재정이라는 공유자원(common resource)을 개별 집단이 사유화하는 것으로,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중요한 사업에 재원이 배분되지 못하게 한다. 개별 집단이나 지역의 표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사회 전체의 발전은 저해하는 정치적 의사결정이다.
선거에서 이기려는 정치인들의 계산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독일, 스웨덴 등 선진국들이 제도화하고 있는 재정준칙(fiscal rule)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재정준칙의 하나인 지출제한준칙(expenditure limit)은 정부 지출의 증가 폭을 제한해 전년도에 비해 일정 수준보다 많은 예산 증가는 불가하도록 법적 규율을 함으로써 정치인들이 정치적 동기로 정부 재정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막는다.
이와 함께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개별집단이나 특정 지역만의 대표자가 아니고 현재 세대의 이익만을 대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익을 추구하는 선거용 선심 예산이나 쫓는 정치인(politician)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이익과 모든 세대의 이익을 반영하는 예산을 추구하는 비전 있고 리더십 있는 정치가(statesman)의 역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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