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백창화, 김병록 지음 / 남해의 봄날
“우리 정식으로 서점을 해보면 어떨까? 책을 읽지 않고, 책이 팔리지도 않고, 동네 서점들이 우수수 문을 닫는 이런 때 서점 창업이라니? 그것도 상권 좋은 도심이 아니라 시골 마을 귀퉁이에서. 지금 장난해?”
지난해 이른 봄, 충북 괴산 미루마을에서 책이 있는 가정식 민박을 운영해, 책 좀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인이었던 백창화·김병록 부부는 서로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할 수 없었던 이 말을 꺼냈다. 100명 남짓 사는 산골 마을에 서점이라니. 자신들이 생각해도 “지금 장난해?”였다. 하지만 이들 마음 한구석엔 좀 다른 말들이 스멀거렸다. “도심 한복판에선 절대 못 하지. 당연히 망할 테니까. 시골 마을 귀퉁이니까 가능한 거 아냐? 일단 임대료가 안 들잖아. 모든 자영업자의 마지막 꿈인 자가 건물. 여기는 우리 집이니 망할 염려가 없어. 책이 안 팔리면 어때. 우리가 다 껴안고 살면 되잖아. 그동안 우리가 매달 사들인 책을 돈으로 환산하면 웬만한 서점 매출이 될 텐데. 이거 말 안 될까?”

결국 이들은 2014년 4월 30일 동청주세무서에서 서점 사업자 등록증을 받았다. 이날 부부는 흥분한 얼굴로 소주잔을 들었지만, 앞날을 걱정한 탓인지 전혀 취하지 않았다. 숲 속 작은 책방의 시작이었다. 첫해 매출은 759만3000원. 입소문으로 1000여 명이 다녀갔다. 매출만 보면 형편없지만 전국의 1000여 명이 평생 갈 일 없던 시골 마을의 작은 서점을 찾아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동적이다.
책은 이들 부부가 숲 속 작은 책방을 열게 된 긴 이야기와 이들이 서점이 줄줄이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힘겹게 목숨줄을 이어가고 있는 전국 작은 서점들을 찾아 나선 이야기이다. “캄캄한 밤길을 끝없이 걸을 때, 힘이 되어 주는 것은 튼튼한 다리도 날개도 아니고 친구의 발걸음 소리”라는 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서점 친구들을 찾아가 그들은 어떻게 시작했고 어떻게 계속하고 있으며, 어떻게 나갈지를 묻고 답을 전한다. 이제는 전국 스타가 된 부산의 대표적 청소년 인문서점 인디고 서원, 서점이자 배움의 장소인 서울 종로의 길담 서원, 수익금을 공공 이익을 위해 쓰는 대학로의 책방 이음, 작은 서점의 세련된 모델을 보여준 홍대 앞 땡스 북스, 술 파는 서점 북바이북 등 70여 곳의 전국 작은 서점의 과거와 현재, 미리 보는 미래가 담겨있다. 이들 작은 서점들은 인문 서점이든, 아트북 서점이든, 주인의 셀렉션 숍이든, 어린이 서점이든 교집합을 갖는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책에 대한 의무감’으로 누가 시키지 않은 ‘문화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 운동, 그거 너무 거창해’라는 주인이라 해도 적어도 큰돈 벌지 않고, 좋아하는 책을 보고, 권하며 소박한 자기 만족적 삶을 살겠다는, 우리 사회의 천편 일률적 성공 경쟁과는 다른 트랙의 삶을 선택한 이들이다.
백창화·김병록 부부도 그런 서점 주인이다. 아들을 위해 그림책을 사서 읽다 일산에서 10년 넘게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한 이들은 2010년 책이 있는 집에서 사람들과 책과 문화를 나누는 따뜻한 삶을 꿈꾸며 미루마을로 내려왔다. 아무런 연고 없는 이 마을을 택한 것은 환경 문화 마을로 조성하는 이곳에 도서관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민들 간 이견으로 마을 조성 계획 자체가 틀어졌다. 황량한 터에 부푼 꿈과 함께 짐을 이미 풀어버린 이들은 도서관 대신 자신의 2층 집에 서가를 만들고, 책을 꽂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정 민박을 시작했다. 부엌과 다락방, 계단도 온통 책인 이곳으로 사람들이 찾아왔고, 이들 중 상당수가 꽂혀있는 책을 사고 싶어 했다. 이런 예비 고객이 늘어나다 결국 숲 속 작은 책방을 열게 됐다. 가정식 서점이라는 말처럼 일상과 책을 파는 공간이 함께 하는, 주인의 취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뜻하고 친밀한 공간이다.
“아무리 크고 훌륭한 서점이라도 내가 갈 수 없는 곳에 있는 서점은 내 삶을 온전히 흔들어 놓을 수 없다. 가까이에서 나와 같은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 주변의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책으로 소통하는, 내가 지나온 시간과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공간, 그 속에는 집 밥처럼 소박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출판 불황과 온라인 서점 중심으로 재편된 유통 구조 속에서, 이들이 말하는 우리 동네 작은 서점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들은 “서점은 사라져서는 안 될 업종이다. 서점은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다. 삶이 모이는 곳이다. 생각들이 모여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동력을 키우는 진보의 공간이다”며 최근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작은 서점들이 잇따라 문을 열고 있는 새로운 변화와 그 시도들을 반가워했다. “문을 연 지 6개월, 1년, 혹은 2년이라도 짧은 시간의 바람 같은 일이라 하더라도 의미 없는 문화 실험은 없다. 우후죽순 게릴라들이 굶어 죽고 밟혀 죽는다 해도 결국 혁명의 전사로 이름을 남기는 법이니까. 너무 장렬한가.”
좀 장렬하다. 한때 문화와 지식의 적자였던 책, 그 책을 파는 서점을 여는 일이 이제 ‘혁명’이라는 단어까지 동원해야 설명할 수 있는 비장한 일이 돼 버렸다니. 책을 낸 ‘남해의 봄날’ 역시 4년 전 서울을 떠난 정은영 대표가 통영에 정착해 만든 지역 출판사로 작은 서점과 북스테이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모두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 속에서 누군가는 책을 지키고 책과 함께하는 소박하고 천천히 걸어가는 삶을, 그런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안도감이 든다. 고마운 일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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