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세상을 떠난 일본 그림책 작가 사노 요코(佐野洋子)의 에세이 ‘사는 게 뭐라고’(마음산책)가 예상치 못한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지난달 나온 책은 한 달여 만에 6쇄 8000부를 찍고 곧 7쇄에 들어갑니다. 사노는 삶과 죽음, 사랑의 의미를 담아내 읽을 때마다 울컥하게 만드는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로 유명하지만, 일반 독자들에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입니다. 그런 점에서 책의 선전이 놀랍습니다.

출판사는 이유를 제목으로 설명합니다. 사는게 뭐라고. ‘사는 게 뭘까’라는 의문문도 아니고 ‘사는 건 뭐다’라며 한 수 가르치는 것도 아닌 묘한 말입니다. 삶에 대한 자신만의 이해. 한 걸음 물러선 관조. 좀 나쁘면 어때라는 쿨함, 여기에 약간의 피곤함의 냄새까지 뒤섞인 말이 독자들의 마음, 그 간지럽고 아픈 곳에 닿은 것 같습니다. 책의 원제는 ‘쓸모없는 나날’. 너무 염세적이어서 그래도 힘을 내보자는 의미로 바꾼 것이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제목에 끌렸다 해도 결국 책의 힘은 까칠하고 까다로운 예술가로 알려진 사노가 솔직하게 풀어내는 일상 이야기가 주는 공감, 삶을 대하는 냉정하면서도 따뜻한 시선 때문입니다. 냉정하기에 객관적일 수 있고, 객관적이기에 자신과 주변을 받아들이고 삶을 껴안는 따뜻함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책은 작가가 2003년부터 2008년, 예순 다섯부터 일흔까지 쓴 일상 기록입니다. 두 번 이혼한 이 ‘독거 할머니’는 전날 전자 매장에서 12만 엔을 썼는데 뭘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며 절망하지만 곧 친구와의 전화 한 통으로, 또 기억 속 생선밥을 만들어 먹으며 하루를 웃으며 넘깁니다.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누워있는 늙은 엄마를 바라보며 평생 자기 삶을 힘들게 한 엄마를 이제는 용서하고 싶다고 말하고, 20년 만에 만난 남자 친구를 껴안으며 “당신도 잘 살아냈구나. 이 체온으로 이 뼈로 이 피부로. 사람은 사랑스럽고 그리운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1년간 한국 드라마에 빠져 같은 자세로 TV만 보다 턱이 돌아간 사연에선 폭소가 터집니다.

예순 아홉, 암이 재발해 2년 정도 시간이 남았다는 의사 말을 들었을 때 그는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그냥 일상을 살아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랫동안 사고 싶었던 재규어를 삽니다. 남은 시간이 2년이라는 말을 듣자 십 수년간 앓았던 우울증이 거의 사라졌고, 인생이 갑자기 알차게 변했다고, 매일 매일이 너무 생생해 즐거워 견딜 수 없다고 합니다.

“사는 건 쉽지 않아. 내 삶도 피곤했지. 난 성격도 좋지 않아.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아. 자 밥이나 먹자.” 사노라면 ‘사는 게 뭐라고’ 뒤에 이런 말을 붙이지 않을까 합니다. ‘사는 게 뭐라고.’ 여러분은 어떤 뒷말을 갖고 있는지요. 마음에 드는 말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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