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서점들의 어려운 형편은 소위 문화 강국이라는 유럽과 미국에서도 크게 사정이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일까, 여행 중 우연히 거리를 걷다가 서점을 발견하면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읽지 못하는 외국어 서적일망정 한두 권 사오는 버릇이 있다. 오늘은 독특한 스토리와 경쟁력으로 시대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세계 속 서점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먼저 소개할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파리를 대표하는 헌 책방이다. 1951년 미국 시인 조지 휘트먼이 문을 연 이 서점은 가난한 작가 지망생이나 오갈 데 없는 사람들에게 소박한 식사와 잠자리를 대접해 줬다고 한다.

낡은 문을 열고 서점에 들어서면 계단과 건물 구석구석에 여유롭게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행여나 독서에 방해가 될까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보지만 어느새 ‘삐거덕’거리고 마는 오래된 나무 바닥 소리. 책에서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보는 여러 개의 푸른 눈에 나는 긴장하고 만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이 정도 소음이야’ 라는 표정으로 다시 책에 얼굴을 묻는다. 이런 여유의 비결은 이 서점을 들어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주치는 한 문장 때문이리라. ‘낯선 사람을 냉대하지 말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일지 모르므로.’ 작은 나무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오래된 타자기와 전 세계의 언어로 쓰인 수천 장의 사랑 메모에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진다.

두 번째로 소개할 곳은 LA다운타운에 위치한 ‘더 라스트 북스토어(The last bookstore)’다. 캘리포니아 햇살이 내리쬘 오후 무렵 찾아간 그곳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다소 어두운 조명과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 앉히는 오래된 책 냄새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온갖 장르의 책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데 정리 방식이 독특하다. 이를테면 추리소설은 감옥처럼 생긴 밀실에 모아 놓거나 내용이 아닌 서적의 ‘표지색상’이나 ‘가격’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2층에는 재미있는 앤티크 소품을 파는 가게를 비롯해 미술작품 전시실, 레코드음반 판매점 등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상점들을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학교 앞 문방구 옆에는 크고 작은 동네서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에는 진한 종이책 냄새와 나의 이름을 불러주던 서점 주인 아저씨, 그리고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손에 쥐고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며 책을 고르던 유년시절의 내가 있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가끔은 재밌고 똑똑한 스마트폰 대신 종이책을 펼쳐 드는 사람들이 있다. 손으로 짚어가며 읽은 몇줄의 문장에서 과거의 누군가도 지금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는다. 종이책과 서점에는 편리한 스마트폰이 대신할 수 없는 추억과 위로의 힘이 있다.

대한항공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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