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교단에서 들려온 두 개의 뉴스에 주목했다. 교원 성범죄 사건과 일부 시·도 교사의 방학 중 당직 거부. 두 개의 뉴스는 교사들이 탄식하는 교권(敎權) 추락 책임의 일단이 그들 스스로에게도 있음을 알려준다. 교원 성범죄 사건과 관련, 교단 일각에서는 “과거엔 더 심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무람없는 소리다. 인성(人性)을 가르쳐야 할 교사가 수성(獸性)의 작태를 보인 것을 어찌 옹호할까. 억울하게 몰리는 일은 없어야 하겠으나 동료 의식으로 감쌀 일은 아니다. 교원 성범죄 사건 뒤쪽을 들여다보면, 이른바 학교 권력의 전횡이 있다. 사건을 일으키고 은폐하는 과정에 교장과 교감 및 일부 부장 교사들의 은밀한 담합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방학 중 당직 거부 뉴스의 장본인은 학교 권력의 또 다른 축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이다. 교육청과 맺은 단체협약에 따른 것이라는데, 어떻게 이런 협약을 맺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방학 중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에 나오는데 교사가 하루 이틀도 당직을 설 수 없다니….
두 개의 뉴스만 봐도, 학교 현장에서 교장 등의 권력 전횡이 여전하고, 그 반대편에서 전교조의 집단 이기주의가 횡행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교권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학생들이 교사를 ‘걔, 쟤’라고 부른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학부모가 ‘내 자식 기죽이지 말라’며 교사에게 삿대질을 해댔다는 소문도 놀랍지 않다.
서양 역사에서는 교사라는 직업이 존경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 귀족 자제를 식민지에서 온 노예들이 가르친 데서 교직 연원을 찾을 정도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가르치는 이를 존숭하는 전통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사제 간 윤리는 공동체의 근간이었다.
지금 그런 이야기는 박물관의 유물처럼 낡은 것으로 여겨진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근본 원인은 교사 - 학생의 관계를 ‘스승 - 제자’가 아니라 ‘교육 공급자 - 수요자’로 인식하게 만든 교육 체제에 있다. 지난 20년간 우리 교육의 바탕이 된 이른바 ‘5·31 개혁 시스템’은 교육 서비스를 강조하며 경쟁력 측면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수차례 예찬했듯 우리 교육 시스템이 배출한 인재들의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그러나 5·31 체제 입안자인 안병영 전 부총리가 저서에서 인정한 것처럼 경쟁력에 치중하다 보니 교육의 첫 번째 목표인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지난달 발효된 인성교육진흥법은 이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극약 처방이다. 인성교육을 법으로 강제한 사례는 세계 교육사에 없다. 누구는 코미디라고 하지만, 사실은 슬픈 일이다.
이런 현실에서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는 것은 가망 없는 꿈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암흑시대의 독립군처럼 사도(師道)를 걷는 이들이 있다. 학교 권력의 전횡 속에 교권 추락의 탄식이 드높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제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교사들. 문화일보 연재 기획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은 그 증거다. 지난 20일자 신문에 소개된 홍인표 교사처럼 어려운 형편의 제자들을 뒷바라지하며 그들의 기둥이 돼주는 스승이 우리 시대에도 존재한다. 자신은 셋방에 살면서도 제자의 공납금을 내줬던 옛 스승의 전설. 그것이 시대 변화에 따라 다른 형태로 전국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공교육의 현장에서 초심을 지키려 애쓰는 교사들을 통해 우리 교육에 아직 희망이 있음을 확인한다.
우리 사회가 이 희망을 보듬어야 한다. 교원 집단의 부패와 이기를 감시할 필요가 있으나, 그 이전에 교단에서 헌신하는 교사들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회복돼야 한다. 문화일보와 기획을 함께 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이제훈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공동체가 선생님들을 존경해야 한다. 선생님이 존경받아야 미래 주인공인 아이들이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받으며 행복하게 자랄 수 있다.”
물론 공동체의 존중을 받기 위해서는 교사들 스스로 집단 이기주의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교사 노릇을 했던 서양 고대의 노예들처럼 노동의 대가에만 연연해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 모둠살이의 미래를 위한 참 스승의 역할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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