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 아들 보아라.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조마리아 여사가 법정의 아들 안중근 의사에게 쓴, 너무도 잘 알려진 편지다. 여사는 아들에게 수의를 지어 보낸다. 상하이(상해) 임시정부 요원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스토리도 인구에 회자된다. “이역만리에서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생일잔치가 다 무엇이냐.” 백범 선생의 주변 독립운동가들이 자신의 생일을 알고 잔치 준비를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곽 여사는 그 돈을 자기에게 주면 음식을 만들어 먹겠다 하여 돈을 받는데, 생일날 음식 대신 권총 두 자루를 내놓곤 호통치며 한 말이다.
고교 ‘한국사’에는 조마리아 여사나 곽낙원 여사에 대해 기술한 교과서가 단 하나도 없다. 항일과 독립의 뿌리 깊은 나무인 모성 리더십을 청소년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별 도움이 되지 않아서일까. 중학교 역사② 교과서 9종에는 독립유공자 남성은 32명이 소개되는데 여성은 1명에 불과하다.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저자가 대부분 남성이라서 그런 것일까. ‘히스 스토리 (His story)’만 있고 ‘허 스토리(Her story)’는 없는 역사교과서를 보고 청소년들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신체적으로 약한 여성은 항일독립운동을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존재로, 독립운동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이 박히는 건 아닌지 두렵다. 항일 무장투쟁을 한 여성 독립유공자들의 스토리는 조마리아, 곽낙원 여사 못지않게 교훈적이다. 보훈처 산하 보훈교육연구원이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27종을 대상으로 ‘국가유공자 공헌내용’을 전수조사한 결과 서술의 균형을 상실한 교과서임이 드러났다.
3·1운동의 아이콘인 유관순 열사의 공헌을 언급한 고교 교과서는 2종에 불과했지만 월북한 뒤 대남적화 사업에 투신해 북한 고위직을 지낸 항일운동가 김원봉 조선혁명당 의열단장의 공헌은 9종 모두 언급했다. 김원봉은 6∼7회에 걸쳐 상세히 다룬 데 비해 유관순 열사는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은 교과서도 제법 많다. ‘한국사’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안창호, 서재필 등은 거의 다루지 않는 것과도 비교된다. 김원봉은 조선 공산당 재건운동을 벌인 인물로, 1948년 월북해 북한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으나 김일성의 연안파 숙청 때 거세되는 비운의 인물이다. 남북한 양쪽에서 버림받았다. 김원봉은 대한민국 헌법상 명예 회복이 불가하다. 보훈처 서훈 대상에도 제외된다.
중고교 교과서 속 국가유공자는 항일의 공헌만이 아니라 호국 건국 보훈의 전체적 관점에서 조망돼야 한다. 중고교 교과서는 개인의 이념적 취향에 의해 서술돼서는 안 된다. 청소년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검정 교과서라면 차라리 국정 교과서로 돌아가는 편이 훨씬 낫겠다.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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