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김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총장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우리나라를 뒤흔들고 지나가면서 백신의 중요성이 국민들에게 다시 주목받았다. 치사율이 높은 신종감염병이 꾸준히 등장하는 데다, 이미 지난해 전 세계를 공포에 휩싸이게 했던 에볼라 바이러스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창궐할 때에도 백신 개발이 인류에게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바 있다. 그러나 백신 개발은 바이러스가 창궐한다고 해서 무조건 개발되는 것은 아니다. 1976년 아프리카 중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처음 발견된 에볼라 바이러스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수십 년에 걸쳐 꾸준히 발생했지만, 백신 개발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최근 서구 선진국으로까지 감염이 확산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나오면서부터였다. 백신 개발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백신을 만들 수 있는 제약사도 한정적인데다 만든다고 해도 수익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탄생한 것이 국제백신연구소(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IVI)다. 국제백신연구소는 효과적이면서 저렴한 백신의 개발과 보급을 통해 전 세계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과 복지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유엔개발계획(UNDP) 주도로 1994년 한국정부가 유치해 1997년 설립됐다. 국내에 본부를 둔 최초의 국제기구이기도 하다.
메르스가 국내에서 절정을 이루던 지난 6월 국제백신연구소에 첫 한국계 수장의 취임식이 열렸다. 백신 개발 전문가이자 에이즈 연구의 권위자인 제롬 김 사무총장이다. 제롬 김 사무총장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애국지사 김현구 선생의 손자다. 70주년 광복절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그를 서울대 연구공원에 있는 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백신의 개발과 보급을 통해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백신과 건강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죠. IVI는 설립 후에 가장 우선적으로 최빈국의 질병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당시 연간 500만 명을 감염시키고 10만여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콜레라에 주목했는데요, 인도에서 200여 년 전 처음 기록으로 보고된 콜레라는 당시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전파됐고, 지금까지 5~6번 정도의 대유행이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질병입니다. 이 콜레라에 대한 저렴한 먹는 백신의 개발이 IVI가 이룩한 중요한 성과 중 하나입니다. IVI는 스웨덴 실험실에서 개발돼 베트남에서 사용되던 먹는 콜레라 백신을 개량해 보다 효과적이고 대량생산이 쉽도록 했습니다. 저가에 보급될 수 있도록 말이죠. 가장 먼저 인도의 제약업체에 기술을 이전했고, 베트남 업체에도 생산 기술을 이전했습니다. 지난 2014년부터는 콜레라가 흔히 발생하는 방글라데시에 백신을 공급하기 위해 현지업체에 기술이전을 완료하고 현재 임상 개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콜레라 외에 장티푸스 백신도 개발해 기술 이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현재 IVI는 급성열성질환인 ‘뎅기열’ 백신 개발을 위해 ‘뎅기백신사업단(DVI)’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의 비영리기구인 사빈백신연구소가 참여한 DVI는 기업이 백신을 개발하면 필요한 국가에 신속하게 투입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IVI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곳에서 한국계 첫 수장이어서 국민적인 관심이 더 높았다. 그런데 그는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알고 있는 한국어가 있는지 물어봤더니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영어로 답했다.
“할머니는 하와이에서 태어나셔서 이승만 박사가 세운 학교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셨지만, 아버지는 한국어를 전혀 못 하십니다. 말하자면 재미교포 4세입니다.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한국어가 독일어, 라틴어보다도 더 어렵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한국과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습니다. IVI에 오기 전까지는 미국 정부에서 에이즈 바이러스(HIV) 백신 개발을 해왔고, 주로 이 질병이 문제가 되는 태국이나 아프리카에서 연구활동을 해왔기 때문이죠. IVI 사무총장 이전에는 한국은 2004년 러시아 출장에서 돌아가는 길에 경유했던 경험과 2011년에 잠깐 방문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가족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애국지사 김현구 선생의 손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세살 때 후두암 수술을 하셔서 할아버지와 말할 기회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할아버지와 산책했던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얇은 종이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쓰시던 것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한국어를 배우셨던 할머니조차도 잘 모르셨어요. 후에 알고 보니 할아버지가 붓글씨로 자서전을 쓰신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번역해주신 하와이대 교수님을 통해 내용을 알게 되면서 당시 할아버지가 느끼셨던 한국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을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독립 이후의 할아버지의 행복감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한국의 발전과 번영을 보는 것은 행복했지만, 많은 애국자가 하나의 민족이 돼야 하지만 (통일이 되지 못해)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현구 선생의 유해는 1998년 국내로 옮겨졌다. 그는 IVI 사무총장으로 선임되면서 2015년 초 한국을 방문하자마자 할아버지의 유해가 안장된 대전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처음으로 한국식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제는 IVI 사무총장으로서 한국에 오셨는데요. 한국이 어떻던가요.
“그동안 한국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 위치해 지리적 중요성도 느꼈습니다. 사실 부친이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미 8군에서 근무하셨는데, 그때 아버지를 통해서 예전의 한국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한국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저도 2004년 러시아 방문 후 귀국길에 한국을 경유하며 한국의 발전상을 경험했는데 깊은 인상을 받았고, 한국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 왔습니다. 한국이 과학기술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IVI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IVI와의 협력을 통해 한국의 바이오 산업 혁신의 역량이 강화되면 비싼 가격으로 인해 지금까지 저개발국에 도입되기 어려운 로타바이러스, 폐렴, HPV(인유두종 바이러스) 등의 ‘프리미엄 백신’도 저렴한 가격으로 개도국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백신전문가로서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메르스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메르스를 통해 감염병 의사로서 많이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질병 발생은 매번 다르게 나타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했을 때와 한국에서 메르스가 발생했을 때 상황이 다르게 전개됐으니까요. 한국의 문병 문화라든지 환자가 많아 병원 응급실에서 오래 머무는 것 등이 문제가 됐지만, 한국의 우수한 첨단 의료기술 때문에 메르스 환자가 100% 추적 확인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 의료기술이 우수하기 때문에 치명률도 비교적 낮았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메르스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이 앞으로 국제적인 연구네트워크를 만들고 국내외 연구기관과 협력을 통해 백신과 항체 치료제를 개발하는 등 다음 메르스 발생에 대비하면 좋겠습니다.”
―에볼라는 물론 메르스도 오래전부터 발견됐는데 수익성 문제로 인해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일부 백신들은 이윤을 내기 어려운 구조로 돼 있습니다. HIV도 그것 중 하나입니다. 서구의 회사들은 이런 것을 생산하고 개발할 수는 있지만 수익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적극 개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도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겪고 있는 질병이라 비싸면 당연히 팔리지 않고, 비싸지 않으면 생산을 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이죠. 이런 백신의 경우, 즉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백신의 경우에는 WHO나 각국 정부에서 비축분을 마련한다는 약속이 있어야 기업이 생산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산 기업 입장에서는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생산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백신의 경우에는 정부가 지원을 해서 개발을 하고 생산을 해야 합니다. IVI는 주로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많은 연구비 지원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메르스의 경우 IVI도 백신 임상시험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현재 연구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시면서 연구비를 유치하고 백신을 개발하시느라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략 1년 중 3분의 1 정도의 시간은 출장으로 외부에서 활동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아내도 과학자(면역학 전공·이탈리아계 미국인)이기 때문에 제 일에 대해 이해하고 열렬히 지지해줍니다. 부부가 과학자이다 보니 평소에 깊이 있는 과학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16세, 13세의 두 딸도 생물학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일이 무엇이고 왜 하는지, 왜 중요한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제 딸들은 아빠를 항상 이해하고 지지해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최근 둘째 딸은 한국의 K-팝 스타를 좋아해 기회가 된다면 만나게 해주고 싶기도 합니다. 그룹 ‘엑소’를 좋아한다고 해요. 미국에 있는 친구들이 연락을 해서 K-팝 스타들을 만났는지 물어본답니다.”
그는 인터뷰 마지막에 한국에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이 백신개발이나 보급과 같은 원대한 비전을 지지하는 데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백신을 개발하는 데는 많은 사람의 참여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한국정부와 스웨덴 정부, IVI 한국후원회는 물론 백신의 개발과 보급을 위해서 지원해주는 여러 기업과 개인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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