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필자는 북한의 비무장지대(DMZ)에서 9년 동안 군 복무를 했다. 초대형 하모니카처럼 만들어진 50개의 대형 스피커에서 뿜어 나오는 파열음은 그 앞의 장대 숲이 쓰러지게 할 정도였다. 옆 병사와 대화도 어려운 심리전의 현장에서 청춘을 보냈다. DMZ에 처음 발을 들여놓던 순간 가슴에 꽂힌 ‘남조선’ 대북 방송의 전파는 충격적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방송은 노동당원으로 성장한 나의 충성심을 소리 없이 무너뜨렸고, DMZ 복무 9년 만에 총을 들고 떠나 자유 대한민국의 국민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한국에서 대북 심리전 방송은 6·25 전쟁 때 시작됐으며 그 후 휴전선 심리전 방송으로 지속돼 오다가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막을 내렸다. 휴전선 심리전 방송은 2004년 6월 15일 0시에 중단됐다. 국군은 철책선 부대들에 6월 14일 밤을 기해 간단한 선전전 중단 의식이 있다는 사항과 몇 가지 지침을 전달했다. 당시 철책선에서 근무했던 병사들의 기억에 남은 지침은 “0시 정각에 야간 경계등을 1분 동안 일제히 소등하라”는 것이었다.

마지막 선전 방송은 먼저 북측에서 “지난 50년간 함께해준 국군 장교, 사병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멘트와 ‘이다음에 다시 만나요’라는 가사가 이어지는 노래가 울렸다. 남측에서도 “인민군 여러분, 그동안 함께하여 고맙습니다. 통일의 그날 만나겠습니다. 건강히 잘 지내십시오”라는 멘트 후 애국가를 틀었다. 서로가 인정할 수 없었던 비무장지대의 국군과 인민군 간에 호칭을 써 준 것이다.

이번에도 북한은 고위급 회담을 발표하면서 ‘대한민국 국가안보실장’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그러나 회담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간 황병서는 돌변했다. 남북 고위급 협상 대표였던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은 25일 “이번 북남 긴급 접촉을 통해 남조선 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가지고 일방적으로 벌어지는 사태들을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일방적인 행동으로 상대 측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 정세만 긴장시키고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병서의 이날 조선중앙TV 발언은 북한의 지뢰 도발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남북 공동보도문에서 ‘유감’이라고 한 것과 배치된다.

합의문 제2항의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고 한 것은 우리 기준으로는 사과가 될지 모르나, 북한측이나 객관적으로 볼 때 절대로 사과가 될 수 없다. 북한이 끝까지 고집한 이 문구는 결국 지뢰 사고 그 자체를 유감이라고 한 것이지, 누가 그 사고의 주체인지는 비켜간 절묘한 기술이다. 북한의 협상 전략에 우리가 속은 것이다.

우리의 성과는, 김정은이 얼마나 대북 심리전 확성기에 전율하고 있는지를 이번에 정확하게 확인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의 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살 수 없다’면 김정은은 ‘대북 확성기를 코앞에 두고는 절대로 살 수 없다’는 결론을 우리는 사흘간의 긴장한 고위급 협상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김정은은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에 자신의 시대를 열게 될 빅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만약 그 행사에 장거리 미사일이나 핵 관련 내용이 있다면 우리는 가차 없이 우리의 또 다른 ‘핵무기’인 대북 확성기 방송 스위치를 거침없이 눌러야 할 것이다. 북한의 협상 전략에 두 번 다시 속는 일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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