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 대지진 92주년… 대학살 진상 다룬 ‘구월,…’ 번역·출간
1923년 9월 4일 밤, 조선인 학살이 벌어졌던 사이타마현 구마가야시의 철도 건널목 주변. 사이타마는 지진 피해는 적었지만 도쿄에서 온 피난민들을 통해 조선인 폭동이라는 유언비어가 번졌다.
1923년 9월 4일 밤, 조선인 학살이 벌어졌던 사이타마현 구마가야시의 철도 건널목 주변. 사이타마는 지진 피해는 적었지만 도쿄에서 온 피난민들을 통해 조선인 폭동이라는 유언비어가 번졌다.

당시 거리 답사-現지도 비교… 현재 상황처럼 생생하게 묘사

평범한 일본인이 폭력 주체로… 파시즘·인종주의에 대한 성찰

“3·1운동 등 거센 저항 일자 공포 느껴 증오범죄로 대응”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로 만들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퇴행적 극우 움직임과 혐한 시위의 뿌리는 어디인가.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돼 화제를 일으킨 책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갈무리)는 이에 대한 답을 준다. 1923년 9월 1일 간토(關東)대지진 이후 벌어진 조선인 대학살에 대한 생생한 문학적 보고서인 책이 간토대지진 92주년을 앞두고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착한 조선인도 나쁜 조선인도 없다. 조선인은 모두 죽여라!” “코리아타운을 다 불태워 버리자!” “일본 사회의 진드기, 쓰레기, 구더기인 재일조선인 구제 처분 담당이다.”

프리랜서 작가인 가토 나오키(加藤直樹)는 도쿄(東京)의 한인 거리 신오쿠보(新大久保)에서 벌어진 혐한 시위에서 간토대지진 당시와 똑같은 증오의 연설(hate speech)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이에 그는 진실을 알리는 블로그를 개설해 이 문제를 파고들었고, 기록된 작업들을 바탕으로 책을 냈다. 따라서 이 책은 평범한 일본인에 의해 자행된 조선인 대학살과 그 아래 똬리를 틀고 있는 파시즘의 얼굴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전후 세대 일본인에 의해 이뤄진 사실 규명이라는 점에서 근대 일본의 파시즘과 인종주의에 대한 철저한 내부 성찰, 자기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책이 일본에서 출간됐을 당시 작가 시게마쓰 기요시(重松淸)는 “읽는 동안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몇 번이나 책을 덮어 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독자는 피해자·가해자 사이에서 어느 편에 자신을 두어야 하는 것일까?”라는 곤혹스러운 소감을 내놓기도 했다.

저자는 도쿄 거리를 답사하고, 당시의 지도와 현재의 지도를 비교하며 역사적 사건의 실상을 마치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인 것처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지진 발생에서부터 시시각각으로 일어난 재해 상황을 전하고, 어떻게 이재민들 사이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거나 “조선인이 반란을 일으켜 군대와 싸우고 있다” 등의 유언비어가 퍼지고, 광기에 휩싸여 갔는지를 보여준다. 학살을 목격한 어린 아이들, 조선인으로 오인되어 폭행당한 일본인, 선조들이 저지른 학살의 현장을 발굴한 지역주민 등 학살의 트라우마를 글이나 마음속에 간직한 사람들을 통해서 학살의 내면에 좀 더 다가간다. 이처럼 사실을 추적해 나가던 저자는, 이 시대 간토대지진이 갖는 의미를 추도와 증오라는 정반대의 입장에 대한 고찰을 통해 살펴본다.

저자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에 대한 학살은 3·1운동과 발흥하는 노동운동에서 드러난 저항력에 대한 공포의 대응이었다고 규정한다. 이 같은 공포에 입각한 증오범죄는 당시 언론에 의해 유포되고, 행정 당국에 의해 조직됐으며, 결국 평범한 일본인에 의해 집행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맥락에서 최근 10년 이상 언론을 통해 유포되고 있는 혐한 담론이 혐한 행동에 대한 심리적 사전 준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저자는 “간토대지진이라는 참극은 다민족 도시 도쿄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거듭 되돌아보고 상기해야만 하는 과오의 원점”이라며 “책을 쓴 이유는 이 원점, 정부가 은폐하려 하고 사람들 또한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이 사건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또한 이 같은 인종주의에 의한 살육은 단지 군국주의 시절의 일본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 아니라, 사유를 멈춘 민주주의를 표방한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며, 이에 대한 우리의 성찰을 요구했다.

한편 책 출간에 맞춰 저자는 오는 9월 12일 방한해 강연 등을 통해 독자와 만날 예정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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