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 그거 바지야?”

최근에 만난 지인들이 의외라는 듯 묻곤 합니다. 치마처럼 걸음마다 펄럭이는 와이드 팬츠를 자주 입거든요. 바지를 구매한 건 2년 만입니다. 워낙 스커트를 좋아하기도 하고, 또 수년간 몸에 꼭 맞는 스키니 팬츠가 인기였으니까요.

요즘 한쪽 바지통에 두 다리가 전부 들어갈 정도로 넓은 와이드 팬츠가 의류 매장과 거리를 점령했습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샤넬, 루이비통, 생 로랑 등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들은 1970년대 스타일의 귀환을 예고하며 플레어(나팔꽃처럼 옷단을 벌린 모양) 팬츠, 큐롯(겉모습은 치마지만, 속은 바지로 되어있는 옷), 와이드 데님 팬츠 등을 대거 선보였습니다. 국내에서도 올봄부터 김민희, 공효진, 려원 등 패션리더로 인정받는 여자 연예인들이 시사회와 같은 공식 석상뿐 아니라 공항패션이나 드라마속 일상패션으로 와이드 팬츠를 선택해 눈길을 끌었고요.

사실 와이드 팬츠는 몸매를 보정해 주기보다는 왜곡시키는 편입니다. 저 역시 이 옷은 ‘중성적’이라고 생각해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유행이라고 해도, 자신의 취향이 아니면 ‘아닌’ 것이지요. 1990년대 후반, 제 친구들이 모두 흘러내릴 듯 큰 힙합 바지로 온 동네를 쓸고 다니거나, 패션 회사 재직 시절엔 대다수의 디자이너들이 배기 팬츠(자루처럼 넉넉하고 폭이 넓은 바지)를 유니폼처럼 입고 다녔을 때에도, 따라 입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즌 출시된 와이드 팬츠 앞에선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동안 나온 넓은 바지들과는 좀 달랐거든요. 일단 하이 웨이스트(허리선이 높은) 스타일이 많습니다. 신체의 가장 가녀린 부분 중 하나인 허리 라인을 살짝 드러내면서도, 다리 끝으로 갈수록 폭 전체가 넓고 곧게 떨어지는 게 특징입니다. 이른바 ‘스트레이트 핏’입니다.

게다가, 허벅지나 종아리를 조이지 않아 통풍성과 활동성이 뛰어나고, 블라우스나 셔츠를 허릿단에 넣어 입으면 단정한 오피스룩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길이가 짧은 상의에 하이힐과 함께 연출하면 다리가 더욱 길어 보이고 스커트 못지않게 여성스러운 분위기도 낼 수 있습니다. 또 편안한 샌들이나 단화 등을 신으면 멋스러운 ‘놈코어’(평범함을 추구하는 패션) 스타일로도 변신 가능합니다.

단, 마네킹 체형이 아닌 이상 마네킹이 입은 의상 그대로 구매하는 건 곤란합니다. 키가 작은 편이라면 종아리 중간 길이의 와이드 팬츠가 적당합니다. 또, 전체적으로 통통한 체형이라면 상의와 와이드 팬츠의 색상을 블랙이나 네이비와 같은 어두운 색상으로 통일하면 날씬해 보이지요.

여름 거리를 휩쓴 와이드 팬츠의 인기는 가을에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어떤 남성은 치마인지 바지인지 헷갈리는 이 옷에 대해 “남자를 우롱하는 아이템”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더군요. 하지만 바로 그게 와이드 팬츠의 진정한 매력 아닐까요. 스커트와 팬츠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옷인 셈이지요.

권은주 패션칼럼니스트
사진 = 구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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