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평 / 논설위원

삼성이 1983년 당시 이병철 회장의 ‘2·8 도쿄선언’으로 반도체에 진출했을 때 일본은 세계 D램 시장의 70%를 점하며 독주했다. 꼭 10년 후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분야 세계 1위에 올랐고, 23년째 이어오고 있다. 내리막길을 걸은 일본은 2000년을 전후해 NEC·히타치·미쓰비시가 합작한 ‘국가대표 연합군’ 엘피다로 반전을 꾀했지만, 2013년 끝내 파산했다. 한 발 추격했다 싶으면 신속하고 대담한 투자로 두 발 달아나는 삼성전자에 역부족이었다.

엘피다는 미국 마이크론에 넘어갔다. 마이크론은 합병 효과로 단숨에 D램 분야 세계 2위로 떠올랐지만, 얼마 안 가 SK하이닉스에 자리를 내줬다. 미·일 연합군도 메모리에 관한 한 한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70%를 넘는다. 이번엔 마이크론 매각설이 나돈다. 시장이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는 추세에 적응하지 못한 마이크론은 실적 부진을 겪어왔다.

유력한 인수자로 거론되는 곳이 중국 국영기업 칭화유니그룹이다. 칭화대가 설립한 회사로 230억 달러(약 27조2000억 원)를 인수대금으로 제시했다. 반도체 신생 기업이 세계 3위 업체를 갖겠다고 큰소리치는 배경에 중국 정부가 있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의 3분의 2를 소비하지만, 이렇다 할 자국 기업이 없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독립’을 위해 향후 10년간 180조 원을 투입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중국 최대 액정표시장치(LCD) 업체인 BOE는 메모리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했고, 스마트폰 중국시장 1위 샤오미도 반도체를 넘본다는 얘기가 들린다. 중국이 거대시장을 자국 기업으로 대체해 가면 한국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다른 한편에선 미국이 역습을 노리고 있다. 세계 반도체 1위 기업 인텔은 지난주 마이크론과 공동 개발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기술인 ‘3D 크로스포인트’ 적용 시제품을 공개했다. 시스템 반도체에 주력해온 인텔이 30년 만에 한국이 장악한 메모리 분야를 공략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잖아도 올 들어 세계 반도체 업계는 인수·합병(M&A) 광풍 속에 강자 위주로 재편되는 중이다. 전방위 반도체 대전(大戰)이다.

반도체는 한국 제조업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미·중의 협공 속에 삼성·SK가 잇단 초대형 투자로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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