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철이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옆에 앉은 안기춘은 외면하고 있었지만 김광도의 반응을 예민하게 주시했다. 오전 9시 반, 둘은 ‘실크로드’로 돌아와 있다. 대기실에는 김광도까지 셋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로스토프도 부르지 않았다. 탁자 위에 놓인 헝겊 가방 안에는 204호실에서 가져온 히로뽕이 가득 담겨 있다. 이윽고 김광도가 물었다.
“뒷수습은 잘했겠지?”
“예, 방 안에 마약 봉지 100개쯤을 흩트려 놓았습니다. 경찰이 현장을 보면 마약 때문에 살해된 것으로 알 겁니다.”
“그렇다면 장 마담이 마약 장사하고 연관되어 있단 말인가?”
김광도가 혼잣소리처럼 묻자 백진철은 먼저 긴 숨을 뱉었다.
“형님, 그놈이 장 마담하고 그 짓을 하고 간 것이 아닙니다. 뻔하지 않습니까?”
“…….”
“마약 장사를 한 겁니다. 집에 온 놈들은 소매상이었겠지요.”
“그 돈으로 뭘 하려고?”
“곧 알게 되겠지요.”
“빌어먹을…….”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 김광도가 둘을 번갈아 보았다.
“난 왜 이런 여자들만 걸리냐?”
백진철은 204호실의 사내를 죽여 침대 밑에 밀어 넣고 나온 것이다. 백진철이 가져온 사내의 신분증이 탁자 위에 놓여 있다. 북한 여권이었는데 한랜드에는 밀입국했다. 기록이 없는 것이다. 러시아 입국 사증이 6일 전에 찍혀 있었고 이름은 고종우, 35세다. 김광도가 말을 이었다.
“장 마담한테는 비밀로 하고.”
“면목 없습니다, 형님.”
“무슨 소리냐? 그래도 장 마담 덕분에 아가씨들 구했다.”
“기반이 굳어지면 내보내지요, 형님.”
“인마, 마누라를 버리란 말이냐?”
외면하고 있던 안기춘이 놀란 듯 시선을 들었으므로 김광도가 빙그레 웃었다.
“난 결혼신고만 하고 자지도 않았어. 너도 알고 있지?”
김광도의 시선을 받은 안기춘이 엉겁결에 대답했다.
“예, 사장님.”
“너도 수고했다.”
“아닙니다, 사장님.”
“이 마약은 치워라. 깊숙하게 숨겨 놓아. 절대로 손대지 말고.”
김광도가 마약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버리기는 아깝고 신고할 수도 없으니 꼭꼭 숨겨놓는 수밖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방 지퍼를 잠그면서 백진철이 말했다.
“눈 속에 숨기면 안전하고 오래갑니다.”
가방을 챙겨 든 백진철과 안기춘이 방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로스토프가 들어섰다. 백진철은 로스토프에게도 204호실에 찾아간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 오랫동안 도망자로 지내온 백진철은 입이 무겁다. 로스토프가 말했다.
“김, 손님이 찾아왔어. 고향 친구라는데.”
로스토프가 말하자 김광도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한랜드에서 고향 친구를 만나다니. 더구나 연락도 없이. 로스토프가 서둘렀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누구야?”
투덜거린 김광도가 밖으로 나갔더니 30대쯤의 사내가 서 있다가 벙긋 웃었다.
“신분을 밝히기가 그래서 고향 친구라고 했습니다.”
한 걸음 다가선 사내가 말을 이었다.
“행정청 내무부에서 왔습니다. 지금 장관님과 내무부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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