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침묵의 시선’ 연출자인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범죄를 기반으로 한 부패 정권이 만들어낸 도덕의 진공상태가 더 이상 유지되지 않게 하고 싶었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다큐멘터리 ‘침묵의 시선’ 연출자인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범죄를 기반으로 한 부패 정권이 만들어낸 도덕의 진공상태가 더 이상 유지되지 않게 하고 싶었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印尼 군사정권 학살 다룬 ‘침묵의 시선’ 오펜하이머 감독

지난 1965년 쿠데타를 통해 인도네시아 권력을 잡은 하지 모하마드 수하르토 군사 정권은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독재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원들과 소작농, 지식인, 중국인 등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학살했다. 이 학살의 전면에는 군인이 아닌 불법무장단체와 지역 조직폭력배들이 나섰다. 하지만 그들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의회와 지역 요직에 자리 잡고, 권력과 부를 유지하고 있으며 희생자 가족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감춘 채 여전히 공포에 떨고 있다.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이 사건은 한 유대계 미국인 다큐멘터리 감독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희생자 가족이 가질 수 있는 사랑과 자존감, 위엄의 한계 범위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학살을 진두지휘한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업적(?)을 기록하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장면을 담은 ‘액트 오브 킬링’으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준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두 번째 다큐멘터리 ‘침묵의 시선’(사진)을 내놓은 이유다.

두 작품은 학살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의 바람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2001년 농장 노동자들의 다큐멘터리 작업을 돕기 위해 처음 인도네시아에 갔다가 학살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된 오펜하이머 감독은 2003년 다시 그곳으로 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그때 학살로 희생된 람리의 동생 아디와 그의 어머니 로하니, 아버지 루쿤을 만난 오펜하이머 감독은 아디와 함께 그 지역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디는 오펜하이머 감독에게 “가해자들을 만나 그들이 어떻게 우리 형과 친인척들을 죽였는지 알아내 달라”고 요청했고, 오펜하이머 감독은 자신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해자들을 만났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거리낌 없이 자신들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 자랑하듯 말했고, 5년간 그들이 학살 당시 상황을 재연해 영화를 만드는 내용을 담아 ‘액트 오브 킬링’을 완성했다. 2012년 이 다큐멘터리의 완성본을 본 아디는 오펜하이머 감독에게 “가해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말했고, 오펜하이머 감독은 아디와 함께 두 번째 다큐멘터리 ‘침묵의 시선’의 촬영을 마친 후 그해 ‘액트 오브 킬링’을 공개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인도네시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촉매작용을 했고,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수천 명의 학살 가해자가 면죄부를 받아 지금도 권력을 누리고 있고, 정권의 부패와 폭력배들의 악행이 나라 전역에 퍼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침묵의 시선’도 지난해 세계 인권의 날(12월 10일)에 맞춰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개봉했다.

‘액트 오브 킬링’은 지난해 국내 관객과 만났으며 ‘침묵의 시선’은 3일 개봉한다. ‘침묵의 시선’ 개봉에 맞춰 방한한 오펜하이머 감독은 지난 8월 27일 수입사 사무실에서 문화일보와 만나 “아디는 가해자들에게 사과를 받고, 화해를 하려 했지만 이루지 못했다”며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에 퍼져 있는 공포와 죄책감의 심연이 얼마나 깊은지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영화를 찍으며 아디 가족의 안전이 가장 걱정됐다”며 “아디가 가해자들을 만나는 동안 그의 가족들을 바로 떠날 수 있도록 인근 비행장에 가 있게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배경에 대해 “이 사건을 접하고,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한 내 가족들이 떠올랐다”며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악을 행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게 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희생자 가족들은 50년 동안 공포에 떨며 살았지만 인도네시아 내에서 이 사건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에 놀랐다”며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기자, 변호사, 교수 등 60명의 인도네시아인이 나를 도왔지만 그들의 안전을 위해 엔딩크레디트에는 모두 익명으로 올렸다”고 덧붙였다. 아디와 친형제처럼 지내고 있다는 그는 “얼마 전에 아디가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위해 너의 젊은 시절을 빼앗았다. 미안하다’고 했다”며 “처음에는 무섭기도 했지만 내 인생의 상당 부분을 바쳐 이 영화를 만든 게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액트 오브 킬링’에서 학살 책임자가 곰 인형을 희생자의 딸로 설정해 칼로 난도질하는 장면을 찍으며 ‘내가 끔찍한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촬영을 잠깐 중단했다”며 “그 사람이 내게 ‘조슈아 울고 있구나’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순간 나도 ‘악’에 오염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날부터 8개월간 악몽에 시달렸다”고 토로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액트 오브 킬링’은 2013년 아카데미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올랐으며 72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다. 또 ‘침묵의 시선’도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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