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겪으며 ‘4단계 통제’ 한계 절감… 현실 맞게 손볼 것”
국민안전처는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개정된 정부조직법에 따라 신설된 중앙부처다.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의 안전정책실 인력과 업무를 이관받고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을 흡수해 장관급 부처로 출범했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박인용 장관은 지난해 12월 신설 부처의 초대 장관직을 맡게 됐다. 그는 군 출신이다. 해군 대장으로 합동참모본부 차장을 지냈다. 박 장관은 취임 이후 과도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사회가 세월호의 상흔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박 장관과 안전처의 일거수 일투족은 항상 관심 대상이 됐던 것이다.
하지만 부처 출범 초기 지나친 관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냉소로 바뀌었다. 국민 머릿속에는 ‘세월호=국가 재난=컨트롤 타워=안전처’ 등식이 꽉 들어있어 국민들은 크고 작은 자연·사회 재난이 터질 때마다 안전처의 ‘영웅적인’ 활약상을 기대하곤 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기대감을 많이 비껴 나갔고 기대감이 너무 큰 만큼 실망도 커졌다. 비난의 목소리도 이와 비례했다. 각종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안전처가 보이지 않는다’ ‘안전처는 뭐 하고 있나’ 등 부정적인 반응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하지만 영화 속에 숱하게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인들 그러한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
과연 안전처는 없는 것인가. 정부서울청사 5층 집무실에서 박 장관을 보자마자 대뜸 “안전처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일부러 감정을 건드려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솔직한 답변을 이끌어내는, 언론의 오래된 전략을 사용했다. 하지만 박 장관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당신이 이러한 질문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투였다. 그는 인터뷰 내내 차분하고 절제된 목소리를 유지했다. 오랜 군 생활과 하루도 거르지 않는 국선도 수련을 통해 다진 절도와 꼿꼿한 자세도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그런 말 많이 듣는데요.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진짜 일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다만 눈에 잘 드러나는 일을 하지 않았을 뿐이죠. 최근 북한의 지뢰 도발과 전방 포격 도발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됐을 때에도 우리 보고 일하지 않는다는 말이 많이 나오더군요. 전시가 되면 국방부가 앞장서 전투를 수행하겠지만 나머지 지원 업무는 우리가 다 해야 합니다. 지난 8월 22일에도 파주에 다녀왔습니다. 포탄이 떨어지거나 공습이 이뤄지면 주민들은 정해진 대피 시설로 몸을 숨겨야 하는데 우리는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대피시설 전수조사를 했습니다. 고층 건물 지하실을 대피 시설로 사용하는데 접경 지역에는 고층 건물이 없어 별도 대피시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파악한 바로는 접경 지역에 380여 개의 대피 시설을 갖춰놓아야 하는데 현재 113개만 만들어 놓았을 뿐입니다. 확충을 더 해야 하는 상황인데 일단 만들어 놓은 대피시설 상태는 어떤지 점검을 한 것입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창궐했을 때 일부 언론에서 ‘재난 컨트롤 타워인 국민안전처가 일정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역시 비슷한 경우인가요.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지난해 12월 말 개정됐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메르스 같은 사회재난에는 재난책임 주관기관이 정해져 있습니다. 메르스 같은 감염병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재난책임 주관기관이 됩니다. 집중호우, 가뭄, 폭설 등 자연재난에 대해선 안전처가 재난책임 주관부처가 됩니다. 물론 녹조(환경부), 적조(해양수산부) 같은 예외도 있지만 재난책임 주관부처는 원칙적으로 안전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는 비상설 기관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설치와 운영 권한이 있습니다. 자, 이번 메르스의 경우 복지부는 재난책임 주관기관이자 중앙 수습본부가 됩니다. 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접근입니다. 감염병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학조사, 질병관리, 방역대책 등인데 이는 의학적 지식에 기초를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그리고 노하우를 갖고 있는 복지부가 컨트롤 타워가 되는 게 맞습니다. 물론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 복지부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설치를 요청했다고 하면 그때는 우리와 복지부가 공동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지만 당시 그 단계까지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는 13개 부처로 이뤄진 메르스범정부지원대책본부를 급히 만들고 복지부를 측면 지원했습니다. 백신도 개발되지 않았고 치료제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원시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하나하나 감염 고리를 끊어야 했기 때문에 전담관리제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지방자치 공무원들을 급하게 교육시킨 뒤 전담 관리자 1만5166명을 투입했습니다. 비용도 우리가 마련해야 했습니다. 기획재정부에서 별도 예산 편성을 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일단 재난관리기금에서 끌어서 썼습니다.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들이 쓰던 폐기물 처리도 환경부의 힘을 빌려 했습니다. 이처럼 13개 부처가 협업해서 메르스 대응에 나선 것이고 우리는 중간에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 것입니다. 대국민 소통 시 통일된 목소리를 유지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어 복지부에서 모든 언론 대응을 했습니다. 우리는 메르스 사태 당시 한번도 언론 보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안전처가 ‘꽁꽁 숨어서’ 일해서 그렇지 일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닙니다.”
―메르스 정부 대응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은 없으신가요.
“정부가 한 목소리(원보이스)를 내기 위해 복지부로 언론 대응을 일원화한 것은 원칙상 맞지만 부정적인 측면만 언론보도화되는 역기능이 있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온통 ‘확진 환자 몇 명, 자가 격리자 몇 명’에만 쏠려 있었기 때문에 정부 대책 등에는 거의 관심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만일 복지부에서 메르스 감염 현황 설명에 주력하고 제가 메르스범정부지원대책본부장으로서 전담관리제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했다고 하면 균형잡힌 시각을 제시해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명이 사망했다’ ‘몇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메르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메르스 감염 환자가 재건축 조합총회 설명회에 갔다’ 등 메르스 관련 보도 양태가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겁을 주는 쪽 위주로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현 재난 통제 방식도 다소 손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회, 자연재난 혹은 테러든 간에 관심, 주의, 경계, 심각 등 4단계 통제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 단계마다 조건이 있어 이 조건을 충족시킬 경우 단계 부여를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메르스는 경계까지 갔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이러한 재난 통제 방식이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융통성과 탄력성이 떨어진다고 봐야죠. 그래서 이를 개편하는 작업을 추진 중입니다. 원칙은 유지하되 재난 특성이 고려된 다소 신축성 있는 안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정보 공개 필요성도 많이 느꼈어요. 중국 정부의 경우 톈진(天津) 폭발 사고 발생 이후 대응을 보면 정보 통제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방송은 물론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꽉 막아버리는 거죠. 위기감과 불안감이 지나치게 고조되면 사태 수습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한 방편이겠죠. 하지만 고도의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갖춘 우리나라에선 그게 불가능합니다. 어설프게 정보 통제를 하려고 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날 수 있어요. 그럴 바에야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정부 내 안전처 위상은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안전처 업무에 대해 안전처 내부나 외부 공무원 사회에서 잘 알지 못했죠. 자격지심이긴 하지만 신생 부처인 우리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구요. 하지만 이제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장관으로서 일할 정도는 됐습니다. 특히 메르스 사태 당시 언론이나 국회에선 안전처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지만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정부 안에선 안전처의 역할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도 문제가 될 텐데요. 안전 관련 의식 개혁 방안도 고려하고 계십니까.
“그럼요. ‘안전’이라는 새 한 마리가 비상하려면 양쪽 날개가 있어야 해요. 오른쪽 날개는 국민의 인식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전이라는 것은 머리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고 몸으로 받아들이고 세포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머리로 생각하면 늦습니다. 안전처가 인생 주기별 맞춤형 재난안전교육 정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정에서입니다. 영·유아, 초·중·고생, 대학생, 사회인, 노인, 장애인 등 인생 주기에 따라 주된 재난 유형이 다를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효과적인 맞춤형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어느 언론에서 물어보더군요. 어느 정도 지나야 국민 인식이 바뀔 수 있냐고요. 그에 대해 60년은 지나야 안전 관련 의식이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아이→아버지→할아버지 육십갑자는 지나야 안전을 중시하는 습성이 몸에 밸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답했어요. 법령(재난안전국민진흥법)은 마련됐지만 안전이 전 국민의 몸에 배기까지는 부단한 체험과 학습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마치 주위에 공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채 숨을 쉬듯이 안전을 중시하는 습성이 몸에 익숙해져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어야 안전 의식이 정착됐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른쪽 날개가 완성돼야 각종 재난·재해 방지 대책, 즉 왼쪽 날개도 온전히 기능할 수 있는 겁니다.”
―안전처 직원들은 다른 부처 공무원에 비해 몸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고충이 많을 것 같은데요.
“안전의 필요충분 조건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특정 지역에 안개가 많이 끼거나 바람이 불거나 비가 많이 와서 휴대전화 재난문자방송(CBS)을 보냅니다. 이동통신사와 상관없이 60자 정도 재난문자방송이 나갑니다. 이동통신 기지국을 기반으로 지역을 특정할 수 있기 때문에 재난·재해 경고로는 굉장히 유용한 툴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귀찮아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설명을 드리고 그대로 필요 없으면 거부하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직원들이 스트레스 많이 받죠. 뭐 이런 식입니다. ‘난 오늘 나갈 것도 아닌데 안개 끼면 끼는 거지 왜 알리냐’며 우리 직원에게 역정을 내시는 겁니다.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하라고 하는데…. 섭섭해하는 직원들이 많죠. 안전처 출범 이후 내부 보고 시스템은 전에 비해 크게 강화됐습니다. 휴대전화는 5분 이내, 상황전파시스템(NDMS)은 7분 이내에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거의 매일 연습하다시피 합니다. 휴대전화 5분 이내라고 하면 위로부터 지시를 받으면 지시가 내려간 지 5분 안에 적정한 상황 보고와 조치 내용을 완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면 다시 연습을 시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규정을 어겨 늦장 보고·조치를 취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안전처 상황실은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곳입니다. 그 긴장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상황실엔 불가피하게 팽팽한 긴장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데 상황실에서 보고가 돌아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죠. 사람은 말을 못해서 언어장애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듣질 못해서(청각장애인) 언어장애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보고 혹은 보고 체계에 목숨을 거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직원이 목숨을 잃을 때였습니다. 홍경우 전 중앙재난안전상황실장이 지난 3월 지병으로 숨졌을 때 빈소를 방문했는데 딸 둘을 남기고 간 것을 보고 마음이 찢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가거도 헬기 추락 사고를 포함해 현재까지 안전처 출범 이후 6명이 숨을 거뒀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군생활 하면서 부하 직원 50여 명이 숨을 거둬 그때마다 창자가 끊어졌는데 안전처에 와서도 이런 일이 계속돼 가슴 아플 따름이죠. 8월 21일 평택 진양폴리우레탄 화재 사고에서 소방 차량 2대가 전소됐습니다. 당시 고가의 소방 차량이 고립됐는데 소방관 목숨이 더 중요하니 차량을 버리고 나오라고 지시해 소방관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소방관과 그들 가족 역시 대한민국의 소중한 국민 아니겠습니까.”
―심폐소생술(CPR)의 중요성이 최근 많이 알려졌는데 원래 이 분야에 대해 관심을 많이 두셨습니까.
“CPR 미담 사례가 있으면 바로바로 표창장을 수여합니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의미를 알고 받아야 하는데 시간을 두고 표창장을 수여하게 되면 김이 새기 때문에 바로 불러서 표창장을 주는 것입니다. 민간인 CPR 기술 습득 동기 유발을 더하기 위해 CPR 교육 급수를 매기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가령 일선 소방서에서 소정의 교육을 받으면 3급, 지방소방본부에서 좀 더 정교한 교육을 받게 되면 CPR 2급, 중앙소방본부의 경우 CPR 1급식으로 하면 CPR 붐을 조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용을 다듬어 곧 발표할 예정입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경험했듯이 지자체의 재난 대응 역량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한 방안은.
“현재 안전처는 소방안전교부세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지자체의 재난안전관리 역량과 책임성 강화를 위한 일종의 정책 수단이라고 할 수 있죠. 또 지역안전지수 시범공개, 생활안전지도 공개 등을 통해 지자체장들이 재난안전관리 업무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지역안전지수란 안전 관련 주요 통계를 활용해 지자체의 안전수준을 계량화한 것으로 분야는 화재, 교통사고, 자연재해, 범죄, 안전사고, 자살, 감염병 등이 있습니다.”
인터뷰 = 노성열 전국부장 nosr@munhwa.com
정리 = 유회경 기자 yoolog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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