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성석제 소설 ‘투명인간’의 이화령 남쪽 각서리
자전거를 타고 이화령(梨花嶺) 고갯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어느덧 들판에는 오곡백과가 익는 고소한 냄새가 감돌기 시작했다. 세상천지가 온통 생명에게는 극락정토 같은데 나 혼자 지옥길을 가고 있었다. 누가 그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내 몸은, 제 맘대로 자전거를 타고 정상까지 한 번도 쉬지 않으면서 이화령을 주파하리라 결정한 주인을 원망하듯 기회만 생기면 옆으로 쓰러지거나 바닥에 자빠지려고 했다. 평지에서 자전거를 오래 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고 보탬도 뺄 것도 없는 일종의 법열(法悅)에 빠지게 되는데 고개를 올라가는 길은 그와 반대로 ‘놓이는 걸음걸음’이 언제나 각성 상태다.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상황을 빨리 모면할까 잔꾀에서 대계(大計)까지 궁리를 해내고 그새 육체는 적응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간마다 감각은 예민하게 갱신된다. 하지만 통속적인 법열이 그렇듯이 억지스러운 각성 또한 영혼의 소비재에 불과하다. 편의점이나 약국에서 손쉽게 살 수 없다는 게 다를 뿐.
이화령 동쪽으로 나란한 3번 국도, 중부내륙고속국도에서 내리닫는 차들이 짐승의 호곡 같은 소리를 내뿜고 있다. 길바닥과 바퀴가 만나면서 거대한 이빨을 갈 듯 드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는데 그건 씩씩대는 내 숨소리에 비할 바 없이 섬뜩하고 인공적이다. 그런 중에도 무엇인가 끊임없이 뒤통수를 뒤로 잡아당기는 듯했다. 이 산중에 웬 물귀신인가, 아니면 산신령인가. 이화령이니 여신일까? 아무리 미모가 출중한 여신이 쉬었다 가라고 유혹한다 한들 나는 결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돌아보면 쓰러지고 말 것이고 쓰러지면 망부석, 아니 우스운 돌무더기가 되리라.
처음 이화령을 넘은 것은 2001년쯤이었다. 그때는 자전거가 자동차도로를 자동차와 함께 간다는 게 운전자들에게는 상식 밖의 일이었기 때문에 상식 없는 인간으로 꽤나 많은 지탄을 받았다. 그 지탄은 차 안에서 욕을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고막을 터뜨릴 듯한 경적과 급출발과 급정거, 급가속에 따른 폭풍 같은 먼지, 이따금은 자전거를 갓길 바깥으로 밀어붙이는 과감한 운전방식으로 나타났다.
서러웠다. 나도 운전을 하는 사람이지만 헬멧과 선글라스 외에는 별다른 보호장구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국도와 지방도를 따라 가는 것이 그토록 괘씸한 일이 될 줄은 몰랐다. 내가 호랑이 수염을 잡아 뽑는 철없는 아해로 보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자기들은 호랑이들이고? 서로의 인식 차이가 가져올 수 있는 치명적인 사고에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어서 이화령을 어떻게 넘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건 확실하다(다녀온 뒤에야 ‘자전거 라이더의 두개골은 수박 껍질보다 약하다’는 경구를 접했다).
두 번째로 넘었을 때는 이른바 ‘4대강 자전거도로’가 개통된 뒤였다. 하루 수백 대의 차량이 오르내리던 이화령 고갯길은 3번 국도와 중부내륙고속도로의 관통터널에 자동차도로로서의 기능을 내주고 난 뒤 갑자기 한적하고 고요해졌다. 그 길 옆으로 페인트로 줄을 치고 자전거 그림을 그려놓는 간단한 방식으로 자전거와 차가 화해롭게 공존하는 도로로 만들었다. 한강 출발점에서 낙동강 하구까지 연결되는 자전거도로 가운데 가장 억지스럽지 않게, 손을 많이 대지 않고 만든 자전거도로였다. 간섭하지만 않는다면 곧 길과 길, 자연과 인공이 뒤섞일 것처럼 보였다. 도로 옆으로 키 큰 나무들이 울창했고 숲의 깊은 그늘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은 차가웠다.
세 번째로 갈 때 남쪽에서 올라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다분히 즉흥적이었다. 자전거를 고속버스 짐칸에 싣고 고향에 가서 그리워하던 친구들을 만났고 자전거를 타고 북진하면서 이곳저곳 닥치는 대로 들러볼 생각이었다. 별생각 없이 문경까지 와서 문경새재 아래의 숙박업소에서 하룻밤을 자고서는 오전 7시에 문을 연 식당에 갔다. 흰 머리와 수염이 멋진 학골선풍(鶴骨仙風)의 식당 주인이 내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중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그는 요즘 한동안 줄을 짓다시피 하며 오가던 자전거길 종주자들이 가물에 콩 나듯 확 줄어들었다고 했다.
주인이야말로 달관한 사람 같았다. 유치원 다니는 그의 손녀가 그를 세상사의 시비를 초월한 신선이 되는 것을 보류하게 하고 있었다. 손녀를 볼 때마다 그의 눈이 가늘어지고 입술이 벌어졌으며 주름으로 웃음의 물결이 일렁거렸다. 산채비빔밥을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먹고 물을 보충한 뒤에 이화령 고갯길로 접어들었다. 한 바퀴, 한 바퀴를 마음속으로 세어가며 고개를 올랐다.
길에는 인적이 없었고 차도 보기 힘들었다. 바람에 떨어진 마른 오리나무 열매, 거위벌레의 솜씨로 꺾어진 참나무 줄기가 바닥에 널렸다. 고갯길의 절반쯤, 그러니까 비고(比高)로 200m쯤 올랐을까. 체온이 급격히 상승하고 게을렀던 근육이 밑천을 드러내며 지옥이 시작됐다. 흥청망청하던 며칠간에 대한 반성, 영육이 물러 터지게 즐겼던 고향의 음식들에 대한 기억이 ‘흥이 다하면 쓰라린 고통이 시작되리라’는 사춘기 시절 경구를 던져왔다. 그런다고 어떻게 할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고 또 갈 수밖에.
나는 멈추었다.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바람에 자전거에서 내려야 했다. 그런 채로 귀를 기울였다. 분명히 어디선가 닭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다. 이윽고 명백히 개가 고개를 높이 들고 멍멍멍 하고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사이엔가 차 소리는 끊겨 있었다. 자전거를 바닥에 기대놓고 천천히 길을 따라 올라갔다. 길이 꺾이는 곳에 집이 나타났다. 길가에 꽃밭을 만들고 접시꽃과 과꽃과 나리, 천인국을 심고 완상할 줄 아는 사람의 집이었다. 호박 덩굴, 들깨, 박하, 취나물도 심어져 있었다. 어디선가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붕이 낮은 집은 햇빛 속에 정적을 흠뻑 머금고 누워 있었다. 차를 타고 오갈 때는 물론, 바쁘게 지나갈 때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집이었다.
그건 황량지몽(黃粱之夢)에 나오는 베갯속 세상과도 달랐고 복사꽃이 흘러내려오는 별유천지(別有天地)도 아니었다. 내 소설 속의 무대, 풍요로운 육체, 영감의 텃밭이 되어줄 곳이었다. 집주인은 주인공이 되어 줄 것이고.
나는 그곳을 ‘투명인간’이라는 장편소설 속에서 ‘고향에서 좌절한 인텔리겐치아 가장이 가족을 이끌고 몇 날 며칠을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서 구름도 울고 넘는 고개 너머에 있는 심심산골 화전민 마을에 정착한 자리’로 묘사했다. 소설 속 마을 이름인 개운리(開雲里)는 내가 나서 중학생이 되기까지 자란 고향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높은 고개 때문에 ‘푄현상’이 일어나 비가 자주 뿌렸다 ‘개어서’ 이름이 ‘개운’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하는데 지나가던 어느 노승이 구름이 끼었다 개는 것을 보고 그리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뻔한 전설이 있었다. 내가 멈추었던 곳의 실제 지명은 ‘각서리(各西里)’로 고갯마루에 거의 다 가서였다. 각서리는 원래 여러 성씨의 사람들이 모여 살아서 ‘각씨(各氏)골’이라는 이름이었고 문경새재 성곽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곽서동(郭西洞)’이라고도 했다 한다.
어쨌든 심심산골 개운리에 목숨을 의탁한 한 식구는 가장과 그의 아내, 노모, 그리고 하나뿐인 장골의 아들인데 그 아들이 같은 화전민 마을의 처녀를 맞아 3남 3녀를 낳고 3대가 한집에서 살아가게 된다. 개운리 산골짜기에 풍요로운 건 구름, 그리고 아이들뿐이었다.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인 조부는 독학으로 약초를 공부해서 웬만한 병은 아이들이 채취해온 약초로 치료한다. 동네 최초로 송아지를 들여와서 농사에 이용하게 하고 장차 대학에 진학하게 될 맏손자의 등록금까지 조달하게 된다. 아이들은 초보적인 수렵, 채취, 어로 기술을 배우고 본능에 의지해 자연이 베풀어주는 다디단 열매와 단백질을 얻어서 나눠 먹고 서로를 돌보고 가르친다. 계곡 물을 막아 얼린 얼음판에서 형님과 아저씨들이 참전한 월남에서 보내온 스케이트를 타기도 한다. 그곳은 아이들에게 심신의 잔뼈를 굵게 만든 요람이고 언제 어디서건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출발점이고 세상의 원형이며 죽을 때까지 함께할 마음의 정처(定處)였다. 또한 내게도 정처가 없을 때 절로 발길이 향하는 곳이 되어 주었다.
언덕바지 양지바른 곳에 띄엄띄엄 서 있는 집들의 주인은 한때 다랑논이었을 땅에 사과나무를 심고 고추를 심고 약초를 심었다. 꿩이 솔솔 기어 다닐 커다란 솔밭의 소나무 줄기가 붉었다. 키 큰 미루나무가 몇 그루 여기저기 서 있었다. 지금 미루나무는 보기도 힘들어졌지만 한때는 우주의 어느 곳을 가리키는 신목(神木)처럼 여겨졌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받아온 미루나무 묘목을 식목일에 ‘가정실습’ 숙제로 심었던 나는 소설에 덧붙여 써넣었다.
“고향 마을 산 중턱에 서 있는 키 큰 미루나무들이 지금쯤 바람에 흔들리고 있겠구나. 그 많은 나뭇잎들이 차르르 하고 흔들리는 소리를 듣다 보면 여기가 천국이 아닌가 싶기도 했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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