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용 / 논설위원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영업통답게 주량도 세다. 한 주석(酒席)에서 양주 폭탄주 20여 잔은 거뜬히 마신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말 한 지인이 건네는 술잔을 정색하며 거절한 채 이렇게 말했다. “당분간 술 좀 자제하렵니다. 장기전에 대비해 체력을 비축해야 될지 몰라서….” 물론 당시 그가 언급했던 장기전은 하나·외환은행 조기 합병에 극렬히 반대하는 외환은행 노조와의 길고 지루한 한판 싸움을 지칭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하나와 외환은행을 합친 ‘KEB하나은행’이 지난 1일 출범했다. 김 회장이 지난해 7월 조기 통합 논의를 공식화한 지 1년여 만이다. 통합 은행 덩치도 단숨에 불어났다. 두 은행 자산을 단순 합산하면 올 상반기 기준 298조8000억 원이다. 우리은행(286조9000억 원)과 KB국민은행(281조5000억 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연결 당기순익도 상반기 8100억 원으로, 신한은행(7900억 원)을 앞선다. 돈으로 추산한 통합 시너지 효과도 상당하다. 중복 투자분 해소를 통한 비용 절감 2692억 원, 양 은행의 강점 공유를 통한 수익 증대 429억 원 등 연간 3100여 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통합만 했다고 해서 이런 시너지가 거저 나오는 건 아니다. 단기간 내 직원 간 화학적·실질적 통합이 따르지 않으면 외려 떼려던 혹을 더 붙일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유행처럼 탄생한 합병 은행 중 인적 통합에 실패해 아직도 패거리 내전(內戰)에 시달리는 은행들이 그 본보기다.

그래서인지 김 회장의 ‘외환 배려’는 눈물겹다. 유례 없이 피합병사의 영문명(KEB)을 통합은행 이름 맨 앞에 붙였다. 존속법인도 외환은행이다. 통합 은행장도 하나은행에 인수된 서울은행 출신의 함영주 행장을 앉혔다. 상고·야간 대학 출신으로 ‘갑(甲)’보단 ‘을(乙)’이 몸에 밴 인물이다. 함 행장은 외환은행 노조위원장 출신을 비서실장으로 선임했다. 화통하지만 치밀하기도 한 김 회장의 별명은 ‘JT’다. 영문 이름 약자다. ‘Joy Together’(함께 즐기자!)라는 뜻도 담겨 있다. 그러나 ‘Junk Together’(함께 쓰레기?)라는 일각의 비아냥도 있는 게 사실이다. 김 회장의 영문 약자 의미가 뭐로 굳혀질지는 그가 한국의 대표 금융그룹 수장으로서 향후 어떤 리더십을 보여주느냐에 달렸다. 단자(短資) 회사 때의 협량(狹量)조직 문화 잔재를 청산하는 일도 그가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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