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등 과감하고 도발적인 구성, 잔혹하면서도 위트 있는 이야기로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구병모(사진) 작가가 ‘익숙한 이야기’ 비틀기에 나섰다.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 그림 형제의 ‘개구리 왕자’ 등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란 동화, 민담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단편 8편을 묶어 소설집 ‘빨간 구두당’(창비)을 내놨다.
“원래 신화와 민담, 전설을 현대적으로 변용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신화, 민담 등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 오히려 우리의 정신 세계를 압박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해석마저 패턴화된 익숙한 이야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해 보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가족에게조차 보호받지 못한 소년이 마법의 빵집으로 도망치면서 벌어지는 그의 등단작인 호러 판타지 ‘위저드 베이커리’도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2013년 공선옥, 배명훈 등과 함께 낸 소설집 ‘파란 아이’에 수록된 ‘화갑소녀전’은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를 변주했고, 올해 초 출간된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에 묶인 단편 ‘파르마코스’의 경우 샤를 페로의 ‘다이아몬드와 두꺼비’를 현대적으로 비튼 작품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화갑소녀전’, 표제작 ‘빨간 구두당’, ‘개구리 왕자’를 모티브로 한 ‘개구리 왕자 또는 맹목의 하인리히’ 등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동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와 함께 권선징악적 기독교 시로 읽히는 새뮤얼 콜리지의 ‘노수부의 노래’, 그림 형제의 민담 ‘세 개의 황금 머리카락을 가진 악마’ ‘영리한 엘제’처럼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민담에서 시작된 작품이 함께 수록돼 있다.
구병모 작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 현실적인 조건들에 대한 고민들을 풀어내 지금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려 했다”며 “동화를 비트는 작업은 재미있었지만, 현대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 마음은 무거웠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빨간 구두당’은 흑백으로만 이뤄진 경직된 도시에 어느 날 ‘빨간 구두’를 신은 처녀가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빨간 구두를 신은 처녀로 인해 색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눈에 사물의 색깔이 보이기 시작하자, 이를 불순하게 여긴 시 정부는 처녀를 화형한다. 하지만 발목이 잘린 빨간 구두만은 불에 타지 않고 돌아다닌다.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가 욕망, 허영, 욕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돼 왔다면 구병모의 빨간 구두는 색깔을 가질 수 없는 획일화된 사회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또 ‘개구리 왕자 또는 맹목의 하인리히’는 원래 주인공인 왕자 대신 하인 하인리히의 관점에서 재구성해 중심과 주변의 구조를 전복시킨다. “흔히 사람들은 모두 각자 삶의 주인공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제약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주변으로 밀려난다.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물의 심리를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한편 최근 민음사가 개혁을 내건, 올해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된 그는 “오랜 전통의 상, 또 혁신을 선언한 첫 해에 수상자가 돼 어깨가 무겁다”며 “그 이름에 어울리는 작업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사진=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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